경쟁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우리는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by 윤태진


곤도 후미에의 소설 『새크리파이스』는 사이클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 한 캐릭터가 경쟁의 스트레스를 피해 2위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팀의 에이스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만족하며 심지어 1위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자칫 1위를 차지해 극심한 경쟁의 세계에 들어가는 걸 경계하는 것이다. 그 캐릭터를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경쟁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우린 왜 그토록 경쟁하며 살아온 거지?


우리는 늘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피곤해하고 또 그 경쟁에서 패배했을 때는 쓰라린 패배감을 맛보며 산다. 물론 반복된 패배가 좋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패배가 싫고 이제는 지겹기까지 하다. 그런데 애초의 목표를 1위가 아닌 2위로 잡는다는 것은 어떨까? 좀 더 욕심을 버리고 5위나 10위쯤으로 목표를 세우면 전혀 다른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느긋하게 뒷짐 지고 걸으며, 어디론가 바삐 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구경꾼처럼 사는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은 아니었을까?


1등은 말 그대로 한 명뿐이다. 그리고 그 아래 모두는 패배자가 되고 만다. 누군가는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하지만 노력이 언제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했지만 운이 나빠 실패한 사람, 결코 1등이 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폭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 살며 패자를 발판 삼아 누군가가 돋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엄마 난 죽을 만큼 노력해도 왜 늘 2등인가요?”

“1등 한 아이가 아이큐 200이라더라.”

“전 아이큐가 110이니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을 할 수 없나요?”

“아이큐를 110으로 널 낳은 엄마가 잘못이다.”

“노력하면 된다고 하던데요.”

“우선은 아이큐 200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

“노력하면 아이큐 200이 되나요?”

“글쎄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다고들 하던데… 노력해서 이뤘다고.”


노력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나의 노력이, 내가 노력했고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군가에 비해 부족했다고 비난받고 패배자로 비판받는 다면 그건 부당하고 억울하다.

어쩌면 1등이란 건 별거 아닌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로 댓글을 다는 이들이 허망하게 자신의 1등을 자랑하는 것만큼이나 아무것도 아닌 것 말이다. 우리는 모두 1등이 만든 헛된 신화에 취해있는지 모른다.

한 유명 산악인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노력입니다. 목숨을 걸만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1등에 도전했다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2등들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승리든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죠. 또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하고요. 죽을 만큼의 노력이 있어야 하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웬 1등만 할 수 있는 말이란 말인가.

인간이란 동물은 모두가 잘 살 수 없다. 욕심이 지독히도 많아 모두가 잘 사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본성적으로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질투와 경쟁심으로 서로의 빈틈을 노린다. 상대방을 꺾고 내 아래 두고 나서야 비로소 작은 관용을 베푼다. 그리고 느긋하게 1등 자리에 앉아 자신의 성공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한다. 죽을 만큼 노력하면 된다고.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keyword
이전 02화친해지면 어색한 동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