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지면 어색한 동료

다들 투명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것 같다

by 윤태진
누군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하시는 듯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 사무실 가득 바쁘게 치는 키보드 소리들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을 살피니 하나 같이 무표정하다. 좀처럼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들 저런 진지한 표정으로 놀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프린터가 쉴 새 없이 문서들을 뽑아내고 또 그걸 바삐 찾아가는 걸 보면 다들 정말로 바쁜 것 같다.

조용하지만 치열한 곳, 과연 이들의 웃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곳은 회사다. 그리고 나 역시 이들과 같이 웃음을 숨기고 조용하게 일하는 회사원이다. 참 잘 웃고 조금 시끄러운 사람인데 나도 어느새 조심 또 조심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다들 투명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것 같다. 그 내면을 알기가 쉽지 않다. 사실 서로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관심이라기보다 일종의 배려인데, 친밀하게 다가오고 알려고 하는 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회식이나 워크숍 등에서 전혀 몰랐던 의외의 모습을 보며 놀란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다들 평소보다 잘 웃고, 한 음 정도 올라간 고음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다들 용케도 숨기고 지내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나도 그렇겠지.

군대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뭐가 좋다고 실실 쪼개.'였다. 실실 쪼개다 선임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도 했지만 웃긴 일이 많은 군대이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군대는 엄청 웃긴 곳이다. 터무니없어 웃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곳이니 자주 웃었다. 선임의 구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웃었다. 그토록, 해맑던 아이였는데 나도 이제 딱딱한 회사원이 된 것 같아 서글프다.

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 건물에 파블루 네루다라는 작가의 글이 걸려 있었다.

'나였던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다행히 내 안의 나는 사라진 것 같진 않다. 퇴근과 동시에 튀어나와 까불어 대는 걸 보면. 아내는 늘 나에게 냉정하다.


"아니 왜 뜬금없이 춤을 춰?"

"신이 나서."

"아이들 볼까 무섭다."

"신이 나는 걸."

"왜 신이 났을까?"

"내일이 금요일이라?"

"내일모레 일요일이야. 그 다음날은 월요일이고. 그러니 당장 그만둬 가장(家長)."


회사를 보면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타고 놀던, 빙글빙글 돌던 놀이기구가 떠오른다. 밖에서 보기에는 엄청 재미있는데 막상 타면 어지럽고 정신없다. 일단 놀이 기구가 돌기 시작하면 그 위에 올라타는 것도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정신없이 도는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겠냐고 투덜거려보지만 회사는 의외로 잘 굴러간다. 비합리적인 듯 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듯 효율적이다. 이러다 회사 망할 거라고 악담을 해도 보기 좋게 굴러가고 따박따박 월급도 잘 나온다.

물론 회사가 절반 정도 망해 의지와 상관없이 퇴사를 한 경우도 있었다. 다시 겪고 싶진 않은 경험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회사는 부디 망하지 않고 빙글빙글 계속 잘 돌아주길 바란다.


"회사 이번 달 월급도 문제없겠지?"

"퇴직금에 3달치 월급을 한꺼번에 주고 거기에 위로금으로 300 정도 챙겨뒀는데 혹시 나갈 생각 있어?"

"왜... 왜 이래 회사?"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게 유행이길래."

"난 몇 번 들어봤던 말들이라 사양할게. 회사가 힘들 다면 이번 달 월급은 그냥 사양할게."


딱딱하고 경직된 회사 분위기지만 그래도 나름의 동지애는 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한다는 동료는 또 공동의 적이 있어 끈끈히 결집되기도 한다. 비록 자주 웃지는 않지만 종종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며 격려하기도 하고 생일이되면 케이크를 사고 어색한 생일 축하 노래를 엄숙하게 불러주기도 한다.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지만 나름 훈훈하다.


언제까지나 회사라는, 배를 타고 갈 순 없겠지만 같이 배를 타고 이는 동안만이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었으면, 그럼 좋겠다. 이왕에 올라 탄 배라면 말이다.

그 배에서 난 되도록이면 쉬운 일을 하고 싶은 건 또 뭐람. 그럼 난 낚시를 해 식량을 마련해야지. 커다란 문어를 낚아줄 생각이다. 꽃게도 낚아주고 싶다. 꽃게도 낚시가 되던가?

놀고먹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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