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다니는 회사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by 윤태진
한 여름, 날 좋은 어느 날_출판단지의 하늘

출판계는 이직이 잦다. 편집자도 그렇고 마케터도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창업도 잦다. 다른 동네에서도 일을 해봤지만 이 동네는 유난히도 이직이 잦은 것 같다.

편집이라는 것이 일종의 기술이라 능력 있는 기술자는 늘 더 크고 좋은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일종의 '업'을 하고 일정한 레벨에 다다르면 창업을 하기도 한다. 편집이라는 기술에 출판 노하우만 보태면 책 한 권 만드는 것쯤 특별할 것도 없다. 회사에서 알게 된 작가들과의 인연이 이어지면 금상첨화다.

출판계의 또 다른 핵심인력인 마케터 역시 이직이 잦다. 유능한 영업직은 어느 회사에서든 환영받기 마련이다. 더구나 마케터들이 쌓아둔 출판계 인맥과 홍보처들은 어디로 회사를 옮기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무기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뭐 이직이 잦은 것도 이해가 간다. 때론 잦은 이직이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어디론가 이동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 이러다 어디로 가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쪽 팀장이 사람들 모으고 있다던데. 연락받은 거 없어?”

“없어요.”

“분위기가 있는 거 같은데. 말해봐. 소문 안 낼게. 넌 좋겠다. 능력 좋아서.”

“아니에요. 능력은 무슨.”

“거긴 여기보다 연봉이 천은 더 많다더라.”

“연봉이야 뭐 여기도 오르겠죠.”

“이러다 갑자기 간다고 하면 지금 준비하는 책, 망하는 거 알지? 하하.”


그리고 다음 달 마케터 H는 대형 출판사로 스카우트되어 갔다. 과장을 달고.

김 팀장도 갔다. 더 큰 출판사로. 남아있는 책은 새로운 마케터와 편집자가 무사히 만들어 출간하였다. 출판계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곳이다.


보통의 회사원은(나를 포함한다) 특별한 기술이랄 것도 없이 회사의 작은 부분이 되어 청춘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특별히 배울만한 기술도 없는 것 같다. 회사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잔재주가 느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실 회사를 벗어나면 전혀 사용할 일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달아나고 싶다고 생각만 한다. 더 늦기 전에 달아나야 한다는 걸 알지만 도전을 위한 첫발을 감히 내디딜 수가 없다. 오늘만 사는 사람에게 내일은 그저 회사로 가야 하는 날일뿐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경쟁을 하게 된다. 사원으로 시작하여 대리와 과장을 거쳐 차장과 부장, 임원으로 가기까지의 길이 험난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버틸 만한 경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화들짝 놀란다.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마치 하나씩 줄어드는 의자에 서로 앉으려고 서로를 노려보는 살벌한 게임과 같다.

그 경쟁이란 것이 단지 능력만으로 승패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게임의 묘미다. 눈치도 좋아야 하며 운도 따라야 한다. 그 경쟁의 시작이 공정한지조차 의심스럽다.

이 게임에서 승자가 되지 못하면 온갖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어야 하고 결국 앉을 의자가 없어지면 게임에서 나가야 한다. 패자를 위한 자비도 위로도 없다.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

우치다테 마키코의 『끝난 사람』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정년퇴임을 생전의 장례식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힘과 열정이 넘치는 주인공은 자신의 은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 같으면 정년까지 버틴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쨌든 그는 정년퇴임 후 화려한 재기를 노리며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재기가 쉬울 리 없다. 실패의 연속이다. 정말 ‘끝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함이 더욱 커진다.

괜한 반발심으로 회사를 원망해 본다. 난 회사를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지 않겠다고. 크게 희생하며 사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찰스 부코스키의 『호밀빵 햄 샌드위치』를 보면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대학을 가고 마치 취미생활을 하듯 설렁설렁 대학생활을 한다. 이후 취직한 『우체국』에서도 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취미생활하듯 대충 근무한다. 그 한량스러움이 부러웠다. 일을 취미 생활하듯 하는 마음가짐이 부러웠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그러더라.

‘일은 어떤 거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지는 것 같다. 일 안에 완전히 묻혀 있으며, 그 의미는커녕, 즐거움이니 괴로움이니 하는 말이 나오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일을 원경으로 멀리서 보아야만 할 듯하다. 곧 관찰자의 시점으로 물러난다는 뜻인데, 우리가 일의 관찰자가 되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일에서 떠나 있게 되거나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에 머물 때이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회사를 취미로 다니기로 결심했다. 일의 진정한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는 취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산을 오르듯 출근하고, 컴퓨터 게임을 하듯 일을 하고, 친구와 수다 떨 듯 상사를 대하면 된다. 난 취미생활을 하는 중이니까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초라한 월급을 아내에게 건 낼 때와 먹을 것을 달라고 입을 벌리는 아기새 같은 자식들을 볼 때면 취미생활을 전문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목숨 걸고 취미생활을 하겠다고.

친구에게 아이들이 잠들면 비로소 나의 자유시간이라며, 그때 시원한 맥주 한잔과 영화 한 편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살까 싶었다. 그 짧은 한두 시간을 위해 하루를 살아야 한다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과 몇 년 뒤 나에게 닥칠 현실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면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했었다. 인생은 늘 이렇게 반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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