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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Jan 30. 2020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된다는 것

부디 철새들이 오래오래 파주를 찾아주길

 

  출판단지는 겨울이 오고 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겨울철새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덕분에 이곳은 새 우는 소리가 사람 목소리보다 많이 들리는 곳이다. 실제로 출판단지 곳곳의 습지에는 황오리, 기러기, 왜가리를 비롯해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등 보호조류들이 관찰되고 있다고 한다. 출판단지 철새들의 주 무대는 아울렛 옆에 위치한, 정확한 이름은 없지만 갈대샛강이라 불리는 습지다. 겨울이 되면 철새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법 멋진 장관을 보여준다. 실제 갈대샛강에서 기러기, 오리, 왜가리 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차로 달리면 고작 삼십 분 정도면 올 수 있는 곳인데 철새 서식지가 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언젠가는 흔히 볼 수 없다는 저어새를 촬영하겠다고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까지 달려갔던 적이 있었는데 참 쓸데없는 짓이었다. 파주에도 온다는데 뭣 하러 거기까지 갔던 거지? 그런데 대체 파주에는 언제부터 들른 거니 저어새야? 그렇다고 이곳에서 실제로 저어새를 목격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저어새는 못 봤지만 기러기는 무척이나 쉽게 볼 수 있다.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기러기가 무리 지어 하늘을 날며 괴이한 울음소리를 낼 때면, 마치 우리에게 출판단지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며 시위하는 것 같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괴이한지 우아하게 날아가는 자태와 무척이나 대비돼 깜짝 놀라곤 한다. 그것도 머리 바로 위에서 큰 소리로 울어대는데 꽤나 ‘이색적인’ 모습이다. 이런 기러기의 울음소리에 놀라 하늘을 쳐다보는 건 출판단지 주민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기러기의 울음소리에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연과 어울려 사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그만큼 특별한 곳에 사는 것 같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것을 보존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들이기에 행여나 이 습지를 없애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갈대샛강 주위로 온통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라 더욱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땅을 매워 건물을 올릴 것 같았다. 더구나 한강 바로 옆이니 조금 높은 건물을 짓는다면 한강이 보이는 멋진 조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인간이 자연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피부로 실감한 적이 있다. 물론 TV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연 파괴의 심각성과 위험성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워왔지만 실제 그 현장을 목도하는 건 또 다른 충격이었다. 

  2007년 12월 서해안 태안반도 해상에서 해상크레인이 유조선과 충돌하여 원유 1만 2547kl가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취재를 위해 태안에 갔었는데 당시 마주한 서해안의 참혹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황금색이어야 할 백사장은 온통 시커먼 기름으로 덮여 있었고, 바다 역시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덩어리진 기름 파도가 쳤다. 마침 당도한 해변에는 기름으로 뒤덮인 갈매기가 날지 못한 채 해변에 앉아 있었다. 한 환경단체의 사진작가는 기름으로 뒤덮인 이 갈매기를 찍었고 그 사진이 다양한 매체에 뿌려지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실제 인근 양식어장, 갯벌 등 생태계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사고였다. 사고 즉시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태안으로 몰려왔고 다들 기름제거 작업에 참여해 상처 입은 생태계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고 직후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흰 방제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쭈그려 앉아 검게 물든 해변의 기름을 치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인간이 멸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사람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생태계 복구까지 10여 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당시의 상처는 말끔히 사라졌겠지? 


  어쩌면 자연에게 인간은 사라져 줬으면 하는 존재일 뿐일지 모른다. 당신들의 만족을 위해 무고한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고 있으니 그 존재가 얼마나 미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제3인류』를 보면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하는 지구가 나온다. 소설 속 지구는 자연 파괴를 일삼는 인간에게 분노하여 결국 공격하기에 이르는데, 현실의 지구는 다행히 특별한 공격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인격이 없으니 망정이지 인격이 있었으면 벌써 수천 번은 공격을 받았을 것이고 인류는 사라져도 이미 한참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아내에게 이 멋진 갈대샛강을 보여주기로 했다. 


  "서울 여자, 눈앞에서 철새 본 적 있어?"

  "동물원에서 봤어."

  "내가 철새 보여줄게." 


  차를 몰아 집에서 10분 거리인 갈대샛강으로 갔다. 귀찮다는 표정의 아내였지만 철새를 눈앞에서 목도하고는, 이거 좀 멋있는데 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저기 있어 보이는 새는 뭐야?"

  "왜가리."

  "어떻게 알아? 시골 사람이라 아는 거야?"

  "나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야."

  "부산에서 더 오래 살았잖아."

  "부산 시골 아니거든."

  "왜가리 아닌 거 같은데. 황새 아니야? 의심스러워."


  혹시 아니면 어쩌지 스스로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찾아볼 것 같지 않아 계속 우겼다. 


  "왜가리 맞아." 

  "그런데 얘들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이왕 멀리서 왔으면 더 크고 멋진 저수지를 찾아가지 왜 파주로 왔대." 


  말은 이렇게 해도 아내는 철새가 반가운 눈치고 끝자락 파주도 조금 좋아진 눈치다. 아무래도 철새를 보여준 건 잘한 일이었다. 

  부디 철새들이 오래오래 파주를 찾아주길, 또 부디 오래오래 갈대샛강이 보존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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