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태진 Nov 15. 2019

우리의 생각은 같을 수가 없다

애초에 다르게 생겨먹었다

  상사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시들에 발끈하는 경우가 있다. 상사뿐 아니다 동료도 부하직원도 다 내 맘 같지가 않다. 부부나 형제, 친구 사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의 한 장면

  

  놀라운 점은 그들 역시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타인으로.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우리는 대화하고 토론하고 때론 갈등하고 또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는 일이야말로 해결해야 하는 일의 거의 모든 부분에 해당한다. 

  이 고통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없다.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회사에는 많은 책들이 굴러(!) 다닌다. 종종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책장 아주 구석의 자리에 숨겨진 책을 보며 놀랄 때가 있다.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책이고,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을 수 있냐고 소름 돋도록 놀란 책들이 다른 이에게 이렇게나 형편없는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책이라면 이렇게 구석진 자리에 먼지를 뒤엎은 상태로 있지는 않을 테니까.  

  책의 주인이 읽지 않고 그냥 꽂아 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읽고 느끼기에는 나만큼의 감동과 즐거움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나와 ‘우리’는 이렇게나 다르다. 

  

  매 순간 나와 타인의 다름에 놀라고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어떻게든 그 간극을 좁혀보겠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역시 그때뿐이다. 그마저도 그렇게 보일 뿐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고집이 얼마나 센지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금이나마 발전적인 방향이 있다면 그건 내가 양보하는 것이다. 물론 양보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하지만 상대의 변화를 기대(만)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아니면 내가 양보하는 것. 방법은 오직 이 세 가지뿐이니 쓸데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시간이 돈인 세상이다.


  책장 속의 외면받는 걸작들을 보며 이런 생각도 한다.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큰 손해일지 모른다고. 몰라서 그냥 놓쳐버린 또는 흘려버린 관계와 기회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 점에서 책은 특별하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린다. 내가 모르는 소중한 경험과 기회들이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넘치도록 존재한다. 그 기쁜 가능성에 설레며 남의 책장 구경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나의 ‘그 책’을 책장 앞 쪽, 가장 잘 보이는 자리로 꺼낸다. 작은 팬심으로.  


* 진지해 보이는 술자리는 사실 시답잖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한다. 홍상수 영화 속 남녀의 대화는 특히 그렇다. 서로의 꿍꿍이가 다르고 그 모습이 꼭 내 마음 같아  낯 뜨겁다. 그 불편함이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드는 것’은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