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0년 전인 1991년 10월.
학력고사를 두 달 앞두고 최종 배치고사를 치른 교실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목욕탕 한증막에서 100을 세고 나올 타임을 기다리듯 답답해하는 애들 60명이 꽉 차있었다. 잘하는 놈들은 한 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못하는 놈들은 이제 와보니 대학은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이유들은 있었다.
'시험 끝나면 여행 한 번 가보자'
애들은 답답한 심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여행이라곤 수학여행으로 경주 한 번 가본 게 태반인 놈들이 목적지도 어딘지 정하지 않고 그렇게들 얘기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목적지는 그냥 '바다'였다. 1호선만 타고 끝까지 가도 인천 앞바다인데...
나는 그러자고 애들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혼자 가고 싶었다. 그냥. 이 답답한 교실과 닭장 같은 독서실을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지금도 옆에 놈들이 바글바글한데 무슨 여행까지 같이냐.
그러나 그 꿈은 시험을 망치면서 불타버린 휴지 조각처럼 날아갔다. 일치감치 재수로 가닥을 잡은 나는 후기 대학 원서도 사주겠다는데 왜 시험 안보냐고 악악 대던 담임 선생님을 뒤로하고, 재수생의 성지였던 종로학원에 일치감치 등록하고 한국 최고의 강사들에게 1년 빡세게 공부해서 화려하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엇, 근데 난데없이 대학에서 추가합격 통지를 받고 어색한 20대를 시작했다. '니 생각은 어떠니'라고 할 것도 없이, 다음 날 무조건 학교로 실려갔다. 입교 전 날,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카세트테이프를 돌려가며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슬픈 건 아니지만 어색한 미래를 받아들여야 했다.
대학 생활은 자퇴냐 졸업이냐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4년간의 과정이었다. 마음이야 거의 전자로 90% 이상 기울었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재수 비용과 부모님의 실망한 모습 때문에 차마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다. 어영부영 시작된 생활이니 쉬운 것이 없었다. 90년대 초반 '칵테일 사랑'을 들으며 대학에 입학한 많은 친구들처럼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제대로 한 번 못가보고 그렇게 대학 시절을 마무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로 제주도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부대에 동기들과 같이 지내긴 했고 친한 대원들도 있었지만, 나름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본 것이다. 이후 다시 육지로 발령받아 일하고 근무하면서, 당연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다 보니 그런 거겠지만, 혼자서 여행한 기억은 거의 없다.
휴가도 그냥 국내에서 아는 사람들이나 만나고, 그러다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많은 여행을 했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나 이외 다른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위해 일정을 짜고 운전을 하며 출장기간 동안 짬짬이 동료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 행복한 기억이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고, 어울림에 거리낌도 없었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았다. 여행은 함께하는 것이라고. 혼자만의 여행에 대한 꿈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시간이 흘러갔다.
스웨덴으로 나오기 전 중곡동의 한 빌라에서 살았는데, 10평 정도의 아주 작은 집이었다. 세 식구가 살기에 너무 작은 집이었고, 그래서 종종 답답함을 달래러 옥상에 올라갔다. 꼴에 동네에서 제일 높은 건물(6층)이라 전망은 좋았다.
나중에는 무중력 비치 의자까지 사서, 선선한 바람에 지는 노을을 보며 혼자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꽤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질문도 던져보고 생각도 정리하는 그 시간이 답답했던 서울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 같다. 그때 다시 예전의 꿈을 떠올렸던 것 같다. 언젠가 혼자만의 시간을 이 비좁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한 번 해봐야지.
비좁은 빌라였지만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넓기만 했다.
그 사이 나는 나이가 들어갔다.
이제는 굳이 혼자만의 여행을 꿈꿀 필요가 없다. 어차피 생활 자체가 혼자다. 하루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도 우리는 섬에 사는 느낌을 받는다. 섬은 여러 개 있어도 쓸쓸하다. 있는 사람은 많지만 나눌 사람은 없는 것이 이 섬의 특징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타향살이에 나를 품어주는 너무나 큰 존재인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떨어지는 체력과 각박한 인간관계, 그리고 불안한 미래로 지쳐가는 40대 남자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 참 설명하기는 힘든데, 그래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한다. 아내와 밤늦도록 얘기해도, 혼술을 해도, 책을 보고 음악을 들어도 풀리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웃는다.
어차피 이 사회는 나이 먹은 남자가 우울하고 힘없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에 페이스북을 할 때도 웃기는 글을 쓰면 '좋아요'가 엄청 달리는데
정말 진솔하게,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통을 적으면 별로 댓글이 없다.
한편 가족 앞에서도 나는 웃는다.
그러면서 몰래 여행도 갔다 오고,
또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지만,
그 또한 쓸쓸한 나를 속이는 것이다.
나는 마누라 속이기를 두 번 했지만,
그런다고 40대 끝에 다다른 남자의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없어지지 않았다.
내년이면 벌써 오십인데.
나는 어느 날, 아내에게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얘기했다.
의외로 아내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조심만 하라고.
40대 부부는 역시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나는 전부터 가고 싶던 Laponia를 목적지로 정했다.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Laponia 안내책자. 건물은 폭포수를 형상화한 Laponia 내 Naturum으로 스웨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Laponia는 스웨덴의 가장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북서부의 토착 원주민인 '라프족(Lapp, 스웨덴어로Sami)의 땅'이라는 뜻인데, 전에 Höga Kusten에 갔을 때 정보센터에서 주은 안내 책자를 보면서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다.
특히, 이번처럼 혼자 간다면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원시림 같은 곳이 바로 Laponia였다. 시간만 된다면 아들과 함께 걸어보고 싶었던 Kungsleden의 심장부, 거기에 가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곳. 그래서, 이번엔 세부 계획도 안 세우고, 그냥 비행기표와 숙소만 끊어 떠났다. 처음 하는 무계획의 계획, 어쩌면 인생이 그런 게 아닐까.
두 번의 속이기를 거쳐,
나는 정말 40대의 고민을 해결할 마지막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40대 마지막의 혼자 여행은 정말 쉽다.
마음먹고 표만 끊으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07kPXSFg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