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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Oct 13. 2021

마누라 속이기 season2-5

나는 아직도 외롭지 않다고 속이고 있는가

밤새 비가 많이 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아침에는 싹 개어있었다. 날은 쌀쌀하지만, Höga Kusten의 최종 목적지인 Skuleskogen 국립공원의 Slåttdalsskrevan 협곡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가뿐히 짐을 꾸리고 일어났다. 가는 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고요했다. 

Skuleskogen 국립공원 가는 길. 혼자 왔다면 차를 멈추고 잠시 앉았다가 갔을 텐데.


20분이 지나 Skuleskogen의 남문에 도착했다. Skuleskogen은 1984년 스웨덴의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Skule의 숲(forest of Skule)'이라는 의미처럼 울창한 숲을 자랑한다.


Skuleberget과 함께 Höga Kusten의 상징적인 산악지대로 9천 년 전부터 융기되기 시작했으며, 당시 빙하를 따라 해안선에 남아있던 빙퇴석(moraine)과 빙력토(氷礫土, till)는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좋은 퇴적 토양을 만들어 현재의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입구부터 시작된 Skuleskogen의 울창한 숲과 안내 표지판


아주 오랜만에 한국의 등산로를 걷는다고나 할까. 형과 걸었던 서울 둘레길도 생각나고 아들과 아내와 함께했던 아차산 등산로도 생각이 났다. 앞에 가족끼리 가는 일행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들었지만, 일단 울창한 숲이 주는 분위기에 흠뻑 빠져보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산길. 힐링 그 자체였다.





잠시 후, 길은 점점 험해졌다. 본격적으로 산이 시작되나 보다. 경사가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산 중턱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게 뭐지?"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 그것은 엄청난 돌무더기였다. 


'Stone fields'라고 설명된 이 지대는 원래 빙하가 녹으면서 길고 얕은 만이 형성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 파도에 깎여 동글동글한 조약돌 모양의 이 바위들은, 이 지역이 융기하면서 그 위치가 바닷가에서 산 중턱으로 변한 것이며, 그때 바위 위에 남은 초록색 이끼들은 지금까지도 남아있게 되었다. 


수천 년을 바위 위에 내려앉아 그런 건지, 이끼들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 재밌는 것은 바위에 귀를 대보니 그 밑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도 졸졸졸 하며 들린다. 이것은 지금의 민물일까,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바닷물일까.    

Stone fileld는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 고루 퍼져있었고 규모는 엄청났다. 


짝퉁 slåttdalsskrevan. 여기가 아닌가벼.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도중에 짝퉁 Slåttdalsskrevan도 만나고, 많지는 않지만 등반객들도 만났다. 동행한 직원은 젊어서 그런지 그들과 얘기도 잘하는데, 나는 그들이 데려온 개와 더 교감을 나눴다. 


등산길에 만난 사람과 어색한 것은 그동안 사람들과 너무 많이 만나 그런 걸까, 아니면 이렇게 자연스러운 만남을 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 걸까.


그래서 이제 사람보다 개가 또 산이 더 좋아지는가 보다 생각하며 말없이 걸었다. 요즘 출근해도 하루 종일 사무실에 혼자 일하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밥 먹고 그리고 혼자 일하다 혼자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이 산에서도 그러는구나.


예전에 어느 차관님 이임사에서 '등산을 하다 보면 계속 걷다가 어느덧 머리 위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이제 내려갈 때가 된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오늘 나도 그런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 정상에 올랐고, 바로 옆 Slåttdalsskrevan에 도달했다.



Slåttdalsskrevan은 구글링을 해봐도 뜻이 안 나오는데, 굳이 추측해 slåtter(풀을 깎다, 영어로 mow)+dal(골짜기)+skerevan(틈새)이 합쳐졌다고 보면 '깎아지른듯한 골짜기의 틈'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 하여간 길이 200m-높이 30m-폭 7m의 이 협곡(ravine)이며, Skuleskogen 내 Slåttberget산을 양분하고 있다. 


이 또한 과거 바닷가에 접해있을 때 파도 등에 의해 침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협곡 내 돌을 주어보니 손으로 힘을 주면 분리되는 퇴적암 형상의 돌들이 널려있는데, 과거 바닷가에서 여러 물질들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Slåttdalsskrevan에서. 자연 앞에서는 이렇게 한없이 작기만 하다.



Slåttdalsskrevan을 끝으로 나의 이번 주말여행 목표는 달성했다. 어제 늦춰진 일정으로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Slåttdalsskrevan까지 보고 나니 오늘 네 시간여의 산행에 다리는 후덜거려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내려오는 하산 길은 동행한 직원과 서로 말없이 쭉 내려왔다. 이후 차를 타고 중간에 점심을 제외한 5시간가량의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길은 예전 여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산 길은 다시 또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번 여행도 나는 마누라를 속인 것이었는지 자문해보았다


행선지를 밝히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돌아왔으니 속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를 속인 듯한 것 같은 느낌이 왜 드는 건지 모르겠다. 사적 여행으로는 정말 간만에 아내와 아들을 떼어두고 와 홀가분하다고, 아내에겐 그리고 동행한 직원에게도 그렇다고 말을 하면서도, 여행 중에 느낀 뭔가 허전함을 나는 스스로에게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Höga Kusten 여행은 짧고 빡센 일정이었지만, 랜드마크인 Skuleberget와 Slåttdalsskrevan를 모두 섭렵할 수 있어 좋았다. 여행의 출발은 Slåttdalsskrevan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는 길에 보았던 Stone field였다. 


일부러 모아서 갔다 부은 것도 아닌데, 산 중턱에 푸른 이끼들과 바다의 모습을 간직한 채, 안으로는 계속 물이 흐르는 생명을 지닌 그 돌 밭이 아직도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끼고 철저한 고독을 찾아 떠났으면서도, 모여있는 그 돌들이 왜 잊히지 않는지. 아직도 지금 느끼는 그 외로움에 대한 해법을 못 찾아 그런 건지 모르겠다. 만 년에 걸쳐 솟아오른 Höga Kusten를 다녀오고도 만 년이나 살 것처럼 고민하는, 40대 남자의 잠 못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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