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날, 나는 웃는 얼굴로 잠들었을 것이다.
결혼을 늦게 하다 보니 두 살 위의 형도 딸이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 동기들 중에도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있는데도, 나는 하나 있는 아들이 이제 한국 나이로 치면 중1일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훌쩍 커버린 아들을 보면 아니 언제 저렇게 컸지 하는 상투적인 놀람과 동시에, 나 또한 어느덧 거울에 비친 나이 든 모습이 싫고 언젠가 사진을 같이 찍으려면 그렇게 싫다고 하던 선배들처럼 변해있음을 느낀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나도 오십. 내가 바라보는 객체들의 변화에는 그렇게 놀라면서, 정작 내가 서서히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차는 어느덧 첫 목적지인 Skuleberget에 도착했다. Skuleberget은 'Skule의 산(mountain of Skule)'이라는 뜻인데, 'Skule'이 과거부터 이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라고 하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Höga Kusten에 있어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1969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우리나라 제주도의 산방산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의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구역에는 Naturum이라고 전시와 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문객센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해당 지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Skuleberget 아래 위치한 Naturum Höga Kusten도 Skuleberget을 포함한 이 지역의 형성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지구가 얼마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빙하시대 이 지역에 얼어있던 빙하의 높이는 최대 3km에 달해 지표를 누르는 힘이 상당했다고 한다. 이후 10,500년 전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그 힘이 줄어들자, 지표는 반발력으로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고무공의 표면을 눌렀다가 손을 떼면 그 표면이 올라오듯이, 당시 해발 9m에 불과했던 섬은 계속 솟아올라 현재 295m의 산인 Skuleberget이 되었다. 높이 295m 중 원래 높이였던 9m를 뺀 해발 286m 지점은 과거 해안선이 상승한 결과로 세계 최고 기록이기에, 이 일대를 높은 해안선이라는 뜻인 'Höga Kusten(영어로 High Coast)'라 명명하게 된 것이다(이상 1시간의 센터 설명과 별도 구입한 책자의 전체 내용을 몇 줄로 정리했습니다. 헉헉).
연구에 따르면 지금도 Skuleberget은 매년 8mm씩 상승하고 있고 이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이며, 앞으로도 100m 더 솟아오른 뒤 그 상승을 멈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해수면에 접하고 있어 바닷가였던 부분 중 파도로 침식된 동굴이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상 인근에는 빙하시대 퇴적물인 빙적토(氷積土, 우리가 잘 아는 생수인 '에비앙'은 알프스 산맥의 빙적토를 거치며 정화된 물로 알려져 있음)와 그로 인해 조성된 숲이 있는 반면, 그 아래인 중간 부분은 돌덩이로 구성된 'Kalottberg(스웨덴어로 '해골 모자(영어로 skullcap-테두리 없는 모자) 같은 산'이라는 뜻)의 특이한 형태를 띠게 된다.
유네스코는 Skuleberget를 포함한 Höga Kusten의 가치를 인정하여 2000년 세계 자연유산(natural heritage site)으로 지정했으며, 이는 스웨덴의 15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문화유산 13, 자연유산 1, 복합유산 1) 중 유일한 자연유산이다.
Naturum에서의 학습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바로 이동할까 하다가 온 김에 Skuleberget 정상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싶고, 다시 또 여기 올 기회는 거의 없을 테니까.
Naturum의 가이드는 정상에 이르는 코스가 세 개가 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경사진 곳은 미끄러우니 완만한 곳으로 올라가라고 했지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가장 최단 거리로 가기로 했다.
"참사관님, 누가 먼저 올라가나 내기할까요?"
중고등학교 때 살던 집이 서울의 동쪽 끝 아차산 자락이라 내 이름이 태진인지 타잔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산을 타는 데는 선수였으나, 30년이 흘러 띠 동갑인 이 친구와 어찌 시합을 할 수 있으랴.
그래라고 말은 했지만, 나이를 감안해서 그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근데 웬 걸, 그는 생각보다 일찍 방전되어 헥헥대고 있었다. 아 진짜 내기할 걸.
사실 올라갈 때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가서 다음 목적지로 가려고 했으나, 점점 여기나 제대로 보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몸도 잘 받쳐주지 않았지만, 295m밖에 안 되는 이 산이 주는 매력에 빠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오를수록 탁 트인 시야가 마치 짝퉁 피요르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만년이 걸려 솟아올랐다는 이 정상을 너무 쉽게 오른다는 것이 이 산에 대한 예의도 아닌 거 같았다.
산 중턱에 있던 동굴에서 쉬었다 가고 다시 오른 정상 산마루에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래, 천천히 살자고 해놓고 또 빨리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갈 생각을 했었구나. 왜 자꾸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만년이 걸려 올라간 이 산, 또다시 수천 년에 걸쳐 올라갈 이 산이 보기에,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은 스쳐가는 바람일 뿐일 텐데.
잠시간의 휴식이었지만, 스웨덴에 오고 2년 동안 지내왔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눈에 실핏줄이 한두 달 사이에 네 번이나 터지도록 일했고 하루 종일 스웨덴 사람들을 쫓아다녔지만 아무 소득도 없이 빈털터리로 사무실에 돌아오던 날. 일 한답시고 아들 학교도 못 구해 6개월간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왕복 4시간의 등하굣길을 데려다주게 했던 못난 가장.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다가 퇴근해서 저녁에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고 집에 오던 날. 좋은 날도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왜 이런 날 이런 곳에서는 자꾸 이런 기억만 떠오르는 걸까. 동행하는 이가 있어 겉으로는 웃지만 심경은 복잡하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여자로 산다는 것을 표현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그러나 오늘도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40대 남자들은 이렇게 공허함을 달랜다.
예전에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가 90년대 초반 대학시절을 보냈던 내 또래들에게 많은 추억과 공감을 주었다면 이제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어떻게 될지도 모를 끝을 향해 계속 걸어가야 하는 무감각해진 40대 남자들을 위한 영화나 소설도 하나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73년생 박태진. 내가 한 번 써볼까.
어느덧 이 산에서 거의 세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를 가는 것은 이미 글렀고, 다시 하산해서 주차장으로 가 숙소를 찾아가는데도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아, 시간관리를 잘못했네. 언제 내려가서 숙소를 찾아가냐. 밥도 해 먹고... 참... 다리도 인제 좀 후들거리는 것 같다.
어찌하다 보니 하산은 했고 앞에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인가가 나오겠지... 하는데, 어? 숙소인 캠핑장이 바로 산자락 아래인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괜히 걱정했네! 인생이 늘 그렇다. 한 치 앞을 못 보기도 하지만, 한 치 앞을 지나면 해결되기도 한다.
하여간 얼른 숙소를 확인하고 주차장까지 걸어가(이게 좀 길었다. 한 20분?) 차를 끌고 읍내 슈퍼로 가서 저녁거리를 사서 밥을 해 먹고 나니 좀 안도가 되었다. 근데 캠핑장의 방갈로다 보니 조리할 수 있는 인덕션만 있지 난방시설은 없어, 잘 때 춥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건 이렇게 하면 됩니다"
같이 간 직원이 냄비에다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증기가 두 평 남짓 방갈로 안을 채우면서 따듯해지기 시작했다. 이야~ 괜찮은데! 역시 젊은 사람들이 캠핑 경험이 많으니 다르긴 다르구나!
이층 침대 위에 직원은 잠시 후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눈을 감고, 나도 잠을 청하며 생각했다.
Skuleberget이 아무도 모르게 올라간 것처럼
나도 서서히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은 모른 채,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지난날들이 손 잡힐 듯 생각나는데,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 이 나이가 참 우울하기도 하고,
걱정이 많은 나이인 거 같애.
근데 아까 멀기만 할 것 같던 하산 길에 숙소도 찾고
떨고 잘 줄 알았던 방갈로에서도
이렇게 따듯하게 잘 수 있잖아.
앞으로 내 인생도 그럴 거야.
내일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올 수도 있고,
그러기에 이렇게 웃으면서 잘 수 있는 거지.
설령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친 하루 끝에 나를 웃게 해 줄 이는
이제 나 밖에 없다.
아마 그날,
나는 웃는 얼굴로 잠들었을 것이다.
희미하게.
감사해.
오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