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너무 고민이라 전 날부터 고민이다. 고민해 둔 옷을 다음 날 꼭 입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쩌면 난 그냥 고민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약간의 마조히시트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블라인드를 걷으면 대략 날씨가 보인다.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무릎과 어깨를, 못해도 둘 중 하나 정도는 드러내고 싶다.
뭘 먹느냐에 따라서도 입을 옷이 달라진다. 많이 먹어야 하는 날엔 최대한 헐렁하게 입는 게 음식에 대한 예의다. 난생처음 가 본 제주 신라호텔 더 파크뷰 런치 뷔페에서는 여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홀에 들어서고 15분 만에 움직임이 한없이 둔해졌다. 다음 15분은 맛을 음미한 다기보단 위를 120% 이상 팽창시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와 커피로 불편한 입가심을 마치고, 소화제를 사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처음부터 양에 맞게 덜 먹었으면 되는데, 마음이 가난해서 몸이 고생이다.
잔뜩 부른 배를 통통거리며 차로 돌아와서는 일단 브래지어 후크 부터 끌렀다. 후크가 툭 풀리자마자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 소화력이, 혈액순환이 나빠진 걸까. 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옷이 불편해졌던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 20대 중반에 요가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단단한 와이어가 든 속옷을 입은 채로는 손을 뻗을 때마다 쑤욱하고 가슴이 컵을 이탈했다. 몸이 제자리로 돌아와도 브래지어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때마다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다듬어야 했다.
그래서 스포츠브라를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포츠브라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컵이 없는 스포츠브라는 돌기가 비쳤다. 좀 두껍고 탄성 좋은 스포츠브라는 또 갑갑했다. 요가 끝나고 땀에 절은 허물을 훌렁훌렁 벗어던질 때가 제일 개운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봤는데, 더 어렸을 때도 불편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겨울이면 브라를 잘 입지 않았다. 어차피 옷이 이만큼 두꺼운데 브라를 차야 할 이유가 없었다. 브라 찬다고 더 따뜻한 것도 아니고, 그맘때 즈음 처음으로 브래지어가 여성 건강에 안 좋다는 뉴스도 접했다.
가슴이 처음 몽우리 지던 10대 초반에는 엄마도 나도 잘 몰라서 성장기 청소년용 브라를 입으면 가슴이 예뻐진다는 상술에 넘어갔다. 잘 때도 차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야 가슴이 예쁜 모양으로 자리 잡힌다는 이유였다. 혈액순환이나 림프절 순환 문제 등을 몰랐던 때였다.
여름이 되자 아토피 때문에 예민한 피부에는 예의 땀띠가 졌고, '학생 브라'를 차고 자기엔 껍껍했다. 아직 에어컨을 사기 전이었다. 여름이면 온 가족이 반라로 살았다. 에어컨이 생긴 뒤로도 에어컨 많이 틀면 머리 아프다고 차라리 옷을 다 벗고 살기를 택했다.
어린애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사람들이 다 우리처럼 사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친구가 무슨 얘기 끝에 자기는 집에서도 브라, 반팔, 반바지를 다 입고 있다고 했다. 나도 놀랐고 그 친구도 놀랐지만 아마 그 친구가 나보다 더 놀랐을 것이다.
신랑도 놀랐다. 그에게는 꽤 타격감 있는 문화충격이었다. 간밤에도 왜 옷을 안 입고 있냐고 묻기에 더워서 벗었다고 했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라는 말에는 옷 벗으면 되는데 굳이 또 에어컨을 켜야 하냐고 응수했다.
같이 산 지 몇 년 되어 요즘에는 그 또한 '자연인'식 삶에 동화되었다. 그래도 요즘은 제발 옷 좀 입고 자라고 잔소리다. 땡글땡글한 얼굴 한가운데에 걱정이 어렸다.
에어컨 때문이다.
징그럽게 더운 요즘, 깜박하고 에어컨 안 켜고 잠들면 새벽녘에 꼭 깬다. 나야 시간을 좀 쪼개서 낮잠이라도 밀어 넣을 수 있지만 신랑은 그럴 수 없으니 꼭 에어컨 리모컨을 쥐고 잠든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밤마다 에어컨을 틀었더니 설설 배가 아파왔다. 덕분에 변비는 탈출했다.
몸살이 나을까, 배탈이 나을까. 시어머니 덕분에 나는 '옷몸살'이라는 용어를 익혔다. 어머니는 아무리 비싸고 예쁜 옷도 내 몸에 안 맞으면 몸살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때마다 꼭 '몸살 난다'가 아니라 '몸살 한다'라고 표현했다. 몸살마저도 주체적으로 앓는 감각이다.
두 증상의 무게를 비교해봤다. 어깨와 목 결림, 소화불량, 애매하게 번져가는 근육통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배탈이 나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최대한 헐벗은 수준으로 작업 중이다.
"야, 아줌마 됐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
코로나 위기경보 4단계 전, 본가에 다녀왔다. 우리 집 베이비부머의 말투다. 58년 개띠에게는 위트와 비아냥, 아이스브레이킹의 경계가 약간 모호한 편이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문득 손톱 밑에 걸리는 딱쟁이처럼 뜯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아물 것을 어린애처럼 굳이 긁어서 또 피가 나고 또 딱지가 앉고 결국 흉터를 남긴다.
쟤 원래 저랬잖아~
엄마의 웃음 덕분에 살았다. 짧은 커트머리에 브라 안 입고 다니는 건 엄마도 똑같다. 엄마의 배우자는 엄마한테는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면서, 가슴도 작은데 굳이 브라 해야 하냐고 하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한다. 내 배우자도 내가 브라를 하든 말든 별 신경 안 쓰니까 윈윈이다(?).
중국에 있을 때 우리 부부는 정말 아무렇게나 하고 살았다. 나는 브라를 안 입었고, 신랑은 '아저씨 비키니'를 입고 다녔다. 중국의 '아재 비키니'란 남자들이 배를 내놓고 다니는 모습을 말한다. 유두와 하체만 가렸다고 '비키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0년대 초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는 공공장소에서의 상의탈의를 불법으로 정의하고 단속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아재들은 그래서 시원하게 윗옷을 벗어재끼는 대신 슬쩍 배만 내놓기로 타협했다. 이미 다 늘어나 속이 훤히 비치는 와이-샤아-스를 걷어 하얗고 동그란 배를 드러낸 모습에 자국의 젊은이들은 '중국 비키니'라는 별명을 붙였다. '타이타이' 또는 '라오타이타이'라고 불리는 목소리 크고 뚱뚱한 중국 아줌마의 전형들은 배를 내놓고 다니지 않으므로, '중국 비키니'는 '아저씨 비키니'로 구체화되었다.
그 시절 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브라자를 차고 만나야 하는 사람, 노브라로 만나도 되는 사람.
와이어 불편한 줄도 모르고 밤새 놀던 티제이는 한국에 두고 갔다. 섹시 뽕브라도 모두 의류수거함으로 향했다. 한국에 돌아온다고 그들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특수디자인으로 상체 지방을 모아모아 예쁜 가슴으로 만들어 준다는 비싼 일본제 엑사브라와도 '사요나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도 있는 법이다.
저번 주에는 출장을 다녀왔다. 브리핑도 있고 해서 전날 밤부터 몇 벌 없는 옷가지를 뒤졌다. 입을만한 셔츠나 블라우스가 있나 한참 고민하다가, 수년 전 믹쏘에서 산 와인톤 블라우스를 골라두었다.
다음 날 아침 현관문을 나설 땐 남편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운전하는 내내 블라우스를 입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블라우스는 가방에 구겨 넣어 휴게소에 들렀을 때 갈아입었다. 회의가 끝난 뒤 돌아오는 길에도 휴게소에 들러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덜 막혔는데, 아주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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