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제이 Oct 25. 2020

강북 살아서 좋은 점

젊은 부부라면 더더욱

제일 좋아하는 친구와의 대화 중에, 

"종로가 최고라고"

"오, 뭐야ㅋㅋㅋ왜?"

"강남은 도성 바깥이잖아. 우리 선조님들이 배산임수라 하지 않았냐"

"오, 그러네, 배산임수면 강북 살아야 하네"

"그렇지! 풍수지리 말이야. 강남에 살면 리버뷰는 다 북향이라구"

"대박,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생각 못 해봤어"

"조상님 말씀에 틀린 것 하나 없다 얘, 나는 강북이 좋아"


 강남 아파트 비싼 거 다 무쓸모라며.



 나름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신랑은 한 번도 강북에 살아 본 적 없다. 서울에서의 첫 살림을 강북에서 꾸리게 된 건 전적으로 나의 의지였다. 강남 쪽에 집을 알아보지 않은 건 아닌데, 

 당연한 얘기지만 예산도 초과였다.


 그러니까, 날 위한다는 핑계 기도 했지만 어쨌든 강북에 살 수밖에 없었다. 

정동길은 우리 부부의 주요 데이트 코스라, 덕수궁 돌담길의 전설(?)이 조금 위협적이다.

 연애시절에도 신랑은 나 살던 동네를 좀 신기해했다. 공장이 둘러싼 틈바구니에, 주택단지 골목 언저리에 들어 선 아파트가 좀 낯설었는지. 처음 이사 왔을 땐 사람 한 두 명 간신히 지나갈 폭의 골목으로 다녔다고, 그 흙길이 지하철역까지 가는 제일 빠른 길이었다는 말에 서울에 그런 곳이 어딨냐며 웃었다. 

 여깄다, 임마.


 학창 시절에도 여기저기 쏘다니며 노는 타입이 아니었던 우리 도련님은 대학교 빼고는 강북을 통 몰랐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솔직히 그에게 강북은 개발이 덜 된, 불편하고 낯설고 어쩌면 별로 안전하지도 않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인터넷에 돌던 어느 짤에, <나는 시골 살고 싶다. 밤이면 한적하게 바닷바람 쐬러 나갈 수 있는 부산 같은 데 말이야> 드립을 치던 아무개처럼, 서울 빼면 다 '시골'인 줄 아는 그 누구처럼, '강남' 뺀 모든 곳은 그에게 별 도시 같지도 않은 곳이었다. 

 강북에 살기 시작 한 지 반년, 그랬던 그가 요즘에는 신나서 맨날 어디 가자고, 뭐 먹으러 저기 가자고 계획 짜느라 바쁘다.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이 빨리 차 뽑자고 성화다. 서울은 주차 진짜 어렵다고 했더니 주차비 내면 된단다.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덕수궁 야간개장. 그리고 신난 남편.

 충정공 민영환의 이름을 딴 도로는 조선의 옛 고궁, 말하자면 서울의 '시뤼세너' 옆동네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가 놀라운 몰골로 현존하고 있는 곳이자, 초보운전자 울리는 언덕배기에 좁디좁은 골목들이 빽빽한 공간이다.

 점수 맞춰 대학 가듯 예산 맞춰 구한 곳이었는데, 되는대로 맞춰 갔던 대학에서 의외로 행복했듯 되는 대로 구한 집에서도 나름의 만족을 찾아가고 있다. 특히 아파트는 그럭저럭이지만 위치가 너무 좋아서 만족도 가산점을 팍팍 부여하는 중이다. 

 차도 애도 없는 커플이 놀러 다니기에 정말 좋다.

최근에는 연달아 고궁 야간개장을 보러 다녔다. 야간이라고 입장료가 더 비싸지도 않다. 

 서울역이나 시청, 광화문까지는 수시로 걸어 다닌다. 반대쪽으로 가면 이대나 신촌까지도 걸어갈 수 있다. 공기 좋은 날엔 둘이 아장아장 가서는 술 한 잔 때리고 들어오기도 좋다. 둘 다 걸음속도가 워낙 빠른 편이라 횡단보도만 타이밍 좋게 잘 건너면 30분 내외로 도착하고는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촌, 북촌 어디든 금방이다. 힙하다는 동네는 그러고 보니 다 강북에 있었다. 익선동이니 이태원이니, 심지어 그 유명한 을지로까지. 어렸을 땐 대체 누구랑 뭐 하고 다녔는지 도통 놀아본 티 못 내는 남편은 평일 저녁 어떻게든 빨리 퇴근해서 놀러 가려고 안간힘이다. 

창덕궁 석조전 앞에서. 마그리트가 그린 한 장면 같은데 아무래도 폰카로는 잘 안 담겼다. 

 그래, 진짜 서울은 강북이다. 인류가 한반도에 터를 잡고 한강을 수도로 삼은 이래로 한강 북쪽은 '잘' 사는 것들은 모조리 강 윗동네에 살았다. 현대에 들어 급격한 개발로 누에 치던 마을부터 시작해서 아랫동네가 싹 다 개발되고 부동산이 난리가 나면서 살기가 팍팍해졌다. 저 포도는 시기도 실 것이고, 나는 원체가 포도를 썩 좋아하지 않으니, 강북이 좋다는 말이다.

 역사와 인간이 뒤얽혀 살아가는 공간의 매력이란. 옛사람들의 흔적을 현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 만지작거려 놓은 모양새도 나는 좋다. 사람 사는 모양새라는 것이 뭐 그렇게 성스럽고 불가침의 그 무엇이겠는가. 부모가 물려준 옷을 자식이 리폼해서 입겠다는데, 돈이 없어서 명품 못 사 입는 것도 사실이지만 뭐.

 게다가 옛날에 만든 옷들이 라인은 촌스러워도 원단만큼은 요즘 기성복보다 훨씬 좋다. 그때는 지금만큼 저렴한 신소재들이 많이 개발되지 않은 덕분에, 툭하면 구멍 나고 늘어나는 패스트패션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빠가 안 입는 양복바지를 내 사이즈에 맞게 고쳐 입고 싶은데, 남자 옷을 여자 옷으로 고쳐주는 곳은 아직 못 찾았다.


 신랑과는 반대로,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강남에 놀러 갔다. 신림이나 코엑스 말고, 진짜 '강남역'의 강남에는 처음이었다. 신촌에서 2호선을 하염없이 타고 달려 반 바퀴 끝에 내렸다. 다들 강남에서 술 마시고 논다는데, 여기 있는 거 신촌에서도 많이 보던 체인점들이다. 왜 굳이 여기까지 왔는지 혼란스러웠다. 클럽 물이 다른가? 

 애기애기한 도련님이었던 신랑은 자기 사는 아파트를 자랑하고 싶었다.(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더욱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또 시큰둥했다. 그렇구나, 단지에 요상한 조형물들이 참 많구나. 근데 나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뱅뱅 도는 것보다 길만 건너면 탁 트인 서울숲이 펼쳐진 우리 집이 훨씬 좋아.

야간개장은 9시에 닫는다. 문 닫을 때까지 놀다 들어와도 다음 날 출근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

 그때의 거절이 무색하게도, 몇십 년 만에 서울숲도 땅값이 많이 올라버렸다. 그래서 더 낡은 동네에 신혼집을 차렸다. 자가가 아니니 얼마나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동안에 만큼은 강 윗동네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살아야지.

 말은 이렇게 해도 부모님만큼은 강남이 더 낫겠다. 젊을 땐 좀 불편하게 살아도 나이 들어서는 편하시기를. 늙으니 시골로 가고 싶다는 말씀만 안 하셨으면 좋겠다.


 모퉁이마다 병원 많은 데에 사셨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 설악산 등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