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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Feb 16. 2021

외모 신경 안 쓰는데 외모지상주의

예쁘면 내 꺼, 아니면 네 꺼

"아 근데 중국애들 진짜 안 꾸미더라고요."

"그건 그래 한국애들이 이쁘긴 이쁜 거더라."

나는 베이징 와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딱 하나 좋은 건 엄청 편했다는 거야. 화장도 안 하고 다니고 옷도 편하게 입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하거든. 중국이라는 곳에서 자유롭다고 느끼다니, 웃기는 일 아니니?

 북경대에서 함께 중국어를 배우는 친구들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나는 나의 나이와 경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제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못하게 막고는 했다. 


 한국 여성의 외모는 중국에서도 이야깃거리다.

 '예쁘다'는 칭찬 뒤에는 외모에만 집착한다, 인위적이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한창 유행하던 서바이벌형 오디션 프로그램도 지나친 경쟁으로 공동체 정신을 헤친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한국 여자 연예인 불쌍하다, 한국 여자들 자체가 불쌍하다는 동정에는 우월감이 감돈다.

 중국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처럼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매 순간 긴장하며 살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 것 치고는 베이징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화장이 진하다. 중국 여자들이 일절 꾸미지 않는다는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버스정류장마다 성형광고에, 사람들은 언제나 다이어트 중이다.

샨시성(산서성)전통음식점 앞에서. 원래도 화장을 꼼꼼히 하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중국에서는 정말 자유롭게 살았다. 

 중국 여자들은 화장할 때 눈썹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 꼬리를 길게 빼서 그린다. 일자눈썹보다는 원만한 곡선 형태로 잡아 낸 눈썹은 매트하게 표현해 낸 얼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은 레드립을 선호한다. 아이라인이나 아이섀도 등 눈썹을 제외한 눈화장은 진하게 깔지 않는 편이므로, 어떤 시선에서는 화장을 아예 안 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중국에서 화장을 안 한 건, 정말 대륙에서는 여자들이 반도에서보다 훨씬 자유로워서는 아니었던 셈이다. 내 딴엔 그저 한국에서 흔하게 듣던 말말말이 안 들렸기 때문에 안 하고 다녔던 건데, 내 나이 덕도 꽤 봤다. 밥 사 먹이면서 내가 말을 막았던 바로 그 친구보다 내 나이가 어렸다면,

 아마도, 아마도.

첫째, 중국어가 짧아 '안 들렸다.' 
둘째, 기혼자다.
셋째, 남이다. 

 중국 사는 내내 '화장 좀 하고 다녀라', '화장을 조금만 더 하면 정말 예쁠 텐데', '화장을 왜 그렇게 하냐', '잘 좀 꾸미고 다녀라' 따위의 화장, 화장, 화장 소리를 안 듣고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중국어가 트인 다음에는 성형했냐는 질문을 꽤 받았으므로, 처음에는 '안 들렸던'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성형 유무를 묻는 이유는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자신감'이 성형에서 오는 거냐는 의미였다. 칭찬의 맥락이 아님을 알기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중국형 가부장제를 이해하고 난 뒤부터 나는 누구를 만나던 다짜고짜 유부녀임을 드러내기 바빴다. 기혼 여성은 싱글보다 존중받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오호호~ 저희 라오공(老公, 남편)도 좋아하겠어요(웃음 웃음)

 나는 상대의 면전에 유부 딱지를 들이밀며 저열한 농담과 지나친 조언을 사전에 차단하고는 했다. 물론 해당 여성의 '주인' 되는 남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오는 예의일 뿐이다. 어느 선생님은 나의 맨얼굴을 조신하고 소박한 한국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화장도 안 하고 꾸밀 줄도 모르는 여자가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이라면 더더욱 땡큐(!)다.  나는 비난의 화살을 피한 게 아니라 외국인/이방인/비중국인이었을 뿐이다. 중국인이 아니면 못생겨도 상관없다.  

 중국의 가차 없는 외모 평가는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다. 예뻐도 뭐라 그러고, 안 예뻐도 뭐라 그러고, 누구는 눈이 크니 작니, 머리숱이 적니 많니 거침이 없다. 잣대만 조금씩 다를 뿐, 폭격은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인 선생님은 외모에 가치부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정작 '나의 옌징은 크다. 반면에 선생님의 옌징은 작다'는 말에는 크게 웃었다. 외국인 학생이 중국어 성조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탓에 '안경'을 '눈'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외모에 우열이 없다면 눈이 작다는 문장에도 웃을 이유가 없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명품이 중국에서 잔뜩 팔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박힌, 누가 봐도 '채널'이고 '똥'인 제품들이 유달리 잘 통하는 곳이 바로 대륙이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도 중할진대, 대외적으로는 당연히 더더욱 곱고 잘난 것만 드러나야만 한다. 그러므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더라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중화여야만 한다. 한류 드라마에서 좋아 보이는 한복도 중국 것이어야만 하고, 김치도 마찬가지다.

 뉴스에 안 나오는 사실을 하나 더 덧붙여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중국사람들은 한글도 일본어처럼 한자에서 생긴 글자인 줄 안다. 한글이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문자라고 하니까, 한글도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https://www.fashionn.com/board/read_new.php?table=1006&number=27592

 반대의 경우는 용납할 수 없다. 못생긴 얼굴이 중국의 얼굴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외모지상주의라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외모지상주의, 경쟁주의, 황금만능주의 등의 부정적인 용어가 감히 중화에 포함될 리 없다. 중화는 완벽하기에.

 현대 중국의 중화사상은 모든 부분에서 잘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혹시라도 잘나지 않은 듯한 부분을 발견하면 어쩔 줄을 모른다.


 엄밀히 따지자면 '못생긴 중국인'에 핏대를 세우는 중국의 분노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진심으로 중화가 자랑스럽다면, 작은 눈과 주근깨에 부들부들 열을 낼 이유가 없다. 아시아의 종주국이 영원히 중국이라면, 정말로 중국이 제일 잘났다면, 동쪽 오랑캐(동이족)의 것을 탐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원래 중국 거야'라는 집착, 유구한 역사와 영광스러운 과거를 새로이 재생산하려는 욕구 뒤에는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비친다. 현재를 온전히 바라보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도망치려는 등짝을, 휘영청 한 그림자가 바짝 뒤쫓는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0j0320a

 중화의 본래 속성은 나르시시즘, 속된 말로 '자뻑'이어야 맞다. 하지만 현대 중국은 문화 대혁명을 비롯한 일련의 작업들을 거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한 과거와의 단절을 이뤄내고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의 본질도 잊어버렸다. 거울이 있어야 내 모습과 사랑에 빠질 텐데, 자기 얼굴을 모르니 주변에 보이는 다른 아름다움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한국도 한 때 그랬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단기간에 많은 과거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식민사관을 배척한다는 미명 하에 지금의 중국과 별 다를 바 없는 소리를 많이도 했다.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것들은 다 내 소유로 삼고 싶은 어린 마음에 다름 아니다.

 요즘에야 '국뽕'이 농담거리지만, 우리도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국가를 비판하는 자는 처벌의 대상이었다. 현대 중국이라고 김치와 한복과 미인을 욕심내는 요즘의 작태를 비판하는 사람이 없겠냐마는, 드러날 수 없을 뿐이다. 예쁘면 중국 것, 미우면 남의 것이라 외치는 모양새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으니, 어쩌면 '우리처럼'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xwM61TPMl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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