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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22. 2023

세계 축제 속에 낯선 이방인, 이탈리아 씨에나

 - 팔리오 축제 

이탈리아 씨에나. 완벽하고 아름다운 중세도시. 

여기에 가면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된다. 시에나의 '팔리오 축제'는 내게 로마인의 후손인 이탈리아인들의 저력을 보여준 환상의 축제다. 이 축제를 경험하고 나서, 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경외심.. 어떤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들은.. 정말 대단하다. 괜히 로마인의 후손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 중 하나인 '팔리오 축제'가 기다리고 있는 시에나로 향했다. 


가슴 두근두근. 그러나 씨에나에 떨어지는 순간 내가 봉착한 난관이란.. 영어가 안 통하는 데다가, 엄청 불친절하다. 특히 축제기간에는 세계 각국, 이탈리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특히 현지인들이 예민해진다.  


일단 시에나로 오긴 왔는데,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가 없어 뱅뱅 돌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힘들게 찾아서 갔건만.. 내가 예약해 놓았던 숙소가 씨에나가 아니란다.. 버스 타고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의 예약 실수....!!! 젠장.  


팔리오 축제 기간에는 호텔 값이 천정부지로 솟기 때문에, 근처 호텔 방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데다가 값도 엄청 비싸다. 그래서 여행 전 유일하게 호텔을 비싼 돈을 주고 fix 해 놓았던 유일한 곳이었는데... 호텔 이름을 착각해서 잘못 예약한 것.. 어쩌지? 오늘 밤 길에서 노숙할까? 침낭도 있는데.. 길가에 배낭 메고 앉아서 한참을 망설였다.. 막막해서. 


정말.. 그냥 노숙해야 하나? 사람들도 영어를 못해서 어찌 가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그냥 확 노숙해 버려??


잠시 생각하다가.. 비싼 돈 주고 예약한 내 싱글방이 어른거려서 버스 정류장으로 무거운 배낭 메고 무조건 가서 아무 버스에나 올라탔다. 또다시 버스 기사 아저씨께 호텔 주소를 들이밀고 생 떼를 쓰기 시작. 


"나 여기 가야 하는데 말이지..." 가뜩이나 축제기간이라 사람 많아 짜증 나는 아저씨는 내게 쏴 붙인다. 이탈리아어는 모르지만, 아저씨 말씀을 알아들었다. 


"아가씨! 여긴 이탈리아야. 영어 말고 이탈리아어를 하라고!"  


하지만.. 기죽을 내가 아니지. 나도 만만치 않아. "알았어, 미안미안, 근데 나 여기 호텔 가야 한다니까.. 주소 한 번만 봐줘. 이 버스 이 호텔까지 가냐고"라며 호텔 주소를 들이밀고 무조건 차에 올라탔다. 사람 많아 짜증 난 아저씨, 할 수 없다는 듯 돋보기를 꺼내 쓰고 주소를 보시더니 간다고 끄덕끄덕, 빨리 타라고 귀찮은 듯 손짓한다.  


가는 게 맞긴 맞는 거야? 어디서 내려야 해?? 라며 띵~ 하니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데, 아까 실랑이를 듣고 있던 어느 영어 할 줄 아는 청년이 뒤에서 한참 뒤에 다가왔다. 


"나 내린 다음에 다음다음 역에서 내리면 네가 가는 피콜로 호텔이 나와."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내린다. 아... 정말 세상엔 착한 사람들이 너무 많지.. 그의 말대로 다음다음 역에서 내리니, 한 영국에서 온 무리들이 '너 피콜로 호텔 가니? 우리 따라오면 돼'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무사히 나는 내 포근한 비싼 방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예쁜 곳... 덕분에 무사히 오랜만에 싱글방에서 푹~ 잤다...... 쿨쿨....  


다음날 버스 대신 시에나까지 걸어갔다. 흐느적~ 흐느적~. 가는 길에는 모두 '팔리오 축제'를 준비하는 듯, 여기저기 지역을 대표하는 국기가 거리에 걸려있다. 정말 중세도시... 현대 건물이 단 하나도 없다.............. 시골 마을이라 평온 그 자체. 어쩜 이렇게 보존이 잘 되어 있을까???  


일단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듯. 무너지면 보수해서 다시 쓴다. 우리 같으면 허물고 새 건물을 지을 텐데,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무너지면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이 짓고 보수해서 쓰기 때문에, 정말 현대식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도시.  


몇 천 년 전 사람들이 썼던 그 광장. 고대 사람들이 모여서 소곤소곤 지방 일을 의논하곤 했던 장소였을 광장. 

정말 조그마하잖아???라는 내 사고방식은, 일 캄포 광장에 모인 인파의 결집 능력을 보면서 바뀌었다. 

이 조그마한 광장.. 정말 대단한 공간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가졌다. 이탈리아 인들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한 도시 안에 이렇게 다양한 파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이 지역의 18개 지역의 대표 가문이 각각의 기를 소유하고 있을뿐더러, 이들을 대표하는 마주가 나와서 안장 없이 말타기 경주를 벌이는 축제가 팔리오 축제다. 

난 몰랐었다..


 말에 안장을 씌우지 않으면, 그리 광폭하다는 것을. 


안장 없는 말을 타고 달리는 건 정말 숙련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뿐더러, 자칫하면 날뛰는 말위에서 미끄러져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친 짓이라 여겨진다.  


거리를 걷는 내내, 중세로 돌아온 느낌이라 참 독특했다.  


그리고, 예쁜 옷을 사고 싶어서 24유로짜리 멋진 원피스를 하나 질러 들고서는 헤헤 거리를 쏘다녔다.  


시에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자그마하지만 예쁜 드레스 입은 공주처럼 귀엽게 아름다운 느낌.  


곳곳에 팔리오 축제를 준비하는 인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말들도 준비되고.  

각 가문을 대표하는 옷을 입은 사람들도 거리 행진을 위해 나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채로움의 극치. 요란함의 극치. 광란의 극치. 경쟁의 극치. 
그러나 질서 정연함의 극치. 
평화로운 대결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축제. 


이상한 모순을 가지고 진행되는 진정한 축제다운 축제. 정말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진정한 축제가 뭔지 알고 싶어? 이탈리아 인들이 어떻게 축제를 즐기고 열광해 왔는지 볼래?..

진짜 축제를 즐긴다는 것이 뭔지 보여줬던 팔리오 축제가 막 시작되려 도시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내 최대의 행운은 <팔리오 축제>를 경험했다는 거다. 

길거리 가득한 인파, 이탈리아내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서 광란의 분위기. 

그러나 침착하고 질서 정연한 그들의 축제 진행방식과 노련함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 가문을 대표하는 노란색 전통 의상을 입은 이들의 행진에 참여했다. 그들 뒤를 졸졸 따라간다. 


무척 더운 날씨. 두꺼운 옷을 입고 힘들 텐데, 사람들의 표정은 온화하고 들떠있다. 


기사 복장을 한 사람은 내가 고대 이탈리아에 와 있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말 로마인스러웠다.. 


인파들은 각자 지지하는 가문의 색을 대표하는 손수건을 사서 목에 휘두르고 그들을 지지하며 따라다닌다. 


터번이 약간 터키나 중동스럽지만, 참 독특한 풍경.. 


행진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그 행렬을 따르면서 골목이 사람들로 꽉 찼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있다 냐온 겨. 


노란색 파를 따라 행진하던 중, 다른 일파를 만났다. 이번엔 파란색. 


진짜 말 탄 기사를 보니까 마음이 설레더라. 


그 뒤엔 파란색 두건을 두르고 노래를 합창하며 따르는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면서 와우~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풍경이구나.. 를 실감하게 해 준다. 


또 다른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행진.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또 이들을 따르느라 대열을 이탈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 밀집해 있는데도, 질서 정연하게 반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침착하게 길을 터주면서 감상한다는 거다. 반대파가 와도 서로 경의를 표하면서 길을 비켜 잘 지나간다. 


행렬은 시에나의 광장에 모여 깃발 공연을 펼치며 그들 가문을 홍보하고 자랑하며 드높이고 있었다. 인파들이 모여든다. 


백마를 탄 백발 노장. 


내게는 이런 평화롭기까지 한 가문 간의 대결이 참.. 인상적...


보통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경우 한국에서는 경찰이 동원되어 길 정리를 해야 하기 마련인데, 이 날 행진에서 이탈리아 인들은 경찰이나 어느 안내인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길을 만들고 통행로를 만들며 '스스로' 축제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스스로 만들고 진행하는 축제'.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자, 이런 대규모 축제를 몇천 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그들의 저력이 느껴지는 행진.. 그들의 위력을 그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느꼈다. 평화로운 축제.



경기가 진행되는 시간은 단 3분. 수많은 인파가 그 3분을 위해서 며칠간을 기다린다.  

오랜 역사의 중심터, 일 캄포 광장. 


광장이 텅 비어 있을 때, 나는 이 광장을 보고 규모만으로 이곳을 과소평가했다. 여기에 몇 명이나 모일 수 있겠어.. 라면서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나는 이 광장이 시에나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유럽 사람들에게 광장의 용도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커뮤니케이션하는 장소였다. 



일 캄포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한,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 그들도 창 밖을 내다보며 곧 있을 경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 옛날 사람들이 신분의 격차를 느꼈을 테지.. 나는 돈의 위력을 느꼈다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경주장을 행진하는 각 가문, 지역의 대표자들. 멋지다.. 

이런 구경 어디 가서 또 할 수 있을까.. 


다채롭기 그지없는 데다가, 일단 내가 중세로 옮겨진 듯한 느낌. 


우리 같으면.. 맨 첫 열은 아마도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경찰이나 의경들의 자리였겠지만, 


이 축제에서는 경찰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즐기는 관중들이 그어놓은 선을 침착하게 지키며 경주를 기다리고 있다. 각양각색의 말들. 눈만 뚫어놓은 말이 참 인상적이다. 


행진을 구경하는 동안 광장에는 사람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다는 것. 


그리고 저 앞에서 말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는 것이었다. 중세에는 모여서 공개토론을 했을 법도 하다. 나는 마이크가 없는 시절 어떻게 여기 모여서 토론을 했다는 거지.. 싶었으나, 

관중들의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능력, 숨죽이고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능력을 보고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이 수많은 인파들이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쉬잇~" 소리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질서 정연함에 가슴 깊이 감동받았다.. 쉬잇.. 관중 전체가 서로에게 말한다. 


쉬이~~~~ 


순식간에 그 광장에 굉장한 정적이 흘렀다.



드디어 오늘 경주에서 뛸 '안장을 차지 않은 말'들과 기수들이 등장하기 시작. 난 몰랐었다. 안장을 채우지 않은 말이 그렇게 광폭하다는 걸. 보통 사람들은 올라탈 수조차 없이 자유분방하다.  자유로운 그들을 조종하고 다루고, 그들을 경주장에 끌어내는 일은  정말 숙련된.. 아주 노련한 기수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걸어가는 것조차 너무 자유분방해서 곧바로 관중석으로 뛰어들까 봐 무서웠다는.. 


하지만 정말 멋지다. 안장이 없는 말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축제 시작을 알리는 행렬이 시작된다. 


갑옷을 입은 중세 기사들이 어마어마한 두께의 창을 들고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흰 소. 왠지 신성함이 절로 느껴지는 소들의 행렬에 이어, 마차를 탄 중후해 보이는 유력자들이 인사를 시작한다. 


창문 밖까지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정말 조금의 틈도 없을 정도로 광장을 메워버렸다. 


뒤돌아보니, 어마어마한 인파. 경주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자, 관중 어딘가에서 "쉬이~" 하는 조용히 하라는 소리가 관중의 입을 타고 광장 전체로 퍼지면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정적이 흐를 수 있다니! 난 정말 깜짝 놀라버렸다. 


모두가 숨죽인 채, 경기장을 세 바퀴 도는 치열한 경주가 시작되었다. 너무 빨라 사진기에 잡히지도 않는다. 

한 명의 기수가 말에서 떨어져 다치고 피를 흘리는 사고가 생겼지만, 일단 1등은 정해졌다. 


그리고 광란의 도가니.. 


단 세 바퀴를 도는 경주.. 그걸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경기가 끝나자 모두 질서 정연하게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순식간에 이 많은 인파가 질서 정연하게 어디론가 빠진다. 


나로서는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쥐 죽은 듯한 침묵을 지킬 수 있다는 것 하며, 평화롭게 모였다가 질서 정연하게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느꼈다..   


선진국, 문화 시민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축제를 즐긴다는 것,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혼란으로 가득한 이탈리아인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조직력을 보여주는 그들의 축제에서 나는 고대의 로마를 느꼈다. 역사란 무시될 수 없다는 것도, 눈에 보이는 혼란스러움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그들 세계에는 알 수 없는 질서가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런 자유로움 속의 질서를 일상생활 속에 녹여낼 수 있을까. 아니.. 나부터라도, 내 삶 속에 이런 '자유로움과 질서 정연'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버무려서 공존시킬 수 있을까. 숙소로 돌아오면서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2002 월드컵 때 우리 붉은 악마들이 생각났다. 한국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문제점은 스스로 즐기기 위한 놀이거리를 생각해 내고 조직하고 발전시키고 계승하는 게.. 약하다는 거다. 일단 기회만 주어지면 잘 노는데, 스스로 어떻게 무얼 가지고 놀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점만이 아니다. 내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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