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가방, 무게 제한 초과
도대체 사랑을 받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했을까.
내 마음은 분명 사랑과 인정을 원했는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랑이 나를 짓누르고
숨 막히게 했을까.
사실, 사랑 그 자체가 무거운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사랑 속에 함께 들어 있는 문화적 짐이었다.
그 짐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에 묻어
세대를 거쳐 눈덩이처럼 내게까지 굴러왔다.
폭력적으로, 그러나 너무도 은밀하게.
그 누구도,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세심하게 다듬어진 채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무거움에 제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나는,
이제 그 가방 속을 열어, 하나씩 꺼내 자세히 보기로 했다.
내 사랑가방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가부장적인 유교문화 속에서 자식은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가문의 자산, 가족 조직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은혜'라는 노래를 필수로 배우던 시기.
나는 항상 부모님의 빛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 했고,
낳고 기른 은혜에 대한 압박감을 ‘효’로 가슴 깊이 심었다.
부모의 뜻을 거르고 '나의 뜻‘을 내세우는 것은, 불효였다.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었다.
그러한 교육된 가스라이팅의 감정인 ‘죄책감'을 흡수하여,
나의 존재 깊숙하게 아로새겨 넣었다.
그 교육된 감정인 ‘죄책감’은,
결코 원할 때 꺼내서 버릴 수 없는 나의 존재의 일부가 되어,
언젠가 그 사회적 가치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자 할 때,
두고두고 나를 끈질기게 쫓아와 괴롭히는 족쇄가 되었다.
특히 사회적 소수였던 옛 여성들에게 자식이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트로피였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제약되어 있던 그때,
잘난 ‘귀남이’ 같은 아들 하나 낳는 것이 큰 자랑이자 의무이자, 신분 보장 보험이었으니.
그러나 예전 가부장적 시대의 아들이든, 요즘의 딸이든
그 감정의 성별 대상만 바뀌었을 뿐,
아직도 자식들이 부모에게 제공하는 기능은 비슷한 듯하다.
많은 자식들은, 지금 시대에도 부모의 트로피가 되어야 한다.
어릴 때 존재 그 자체로 부모 곁에 머물러 기쁨을 주고,
성장 뒤에는 독립해 자신의 삶을 살러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의 결핍과 명예 그리고 감정적 허기를 채워주는,
가장 믿을만한 안전한 만능 도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들의 가방 속에는
각자 다른 역할 카드들이 잔뜩 들어 있다.
딸이면 효녀여야 했고,
며느리면 시댁을 챙겨야 했고,
아들이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했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어머니는 모성애를 풀 장착한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
이런 역할별 의무와 기능 속에서
존재마다 다른 개성은 오히려 갈등을 만드는 방해 요소였다.
‘나’라는 존재보다,
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존재를 결정짓는 기준이었다.
그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쓸모없거나’, ‘고장 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 역할들을 ‘나’라는 존재보다 우위에 놓고
훌륭하게 소화해내야만 했다.
거부하기 힘든 은밀한 침범은 항상 호의로 오기 마련이다.
늑대가 아기 양들에게 엄마인척 손을 내밀 때,
두텁고 시커먼 야생의 진짜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뽀얀 밀가루를 바르고, 사랑 가득한 엄마 흉내를 낸다.
그렇게 침범이 호의를 타고 올 때, 가장 폭력적이기 쉽다.
우리가 겪어온 가부장적 문화, 역할 우선 문화에서는
우리는 모래알처럼 개개인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빈 곳을 점성 있게 달라붙어 메꾸는
너와 내가 경계 없이 유기적으로 한 몸으로 섞이는
아메바 같은 경계가 흐릿한 조직이 되어야 했다.
자식이면 “엄마 마음을 헤아려야지”라는 말속에서,
며느리면 “가족이니까”라는 명목 아래,
어머니면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라는 가치 아래,
아버지면 "우리는 하나니까"라는 의무감 아래,
우리 개개인의 특성은 무시되고, 경계는 쉽게 무너졌다.
그 안에서 ‘나의 욕구’,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말하는 것은
곧잘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수의 집단 문화 속에서,
마치 서로 경계 없음이 ‘공동의 선’인 양
친밀함과 단결의 표본인 듯, 손쉽게 설득당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가족은 가장 큰 사랑의 장이기도 하지만,
가장 깊이 개인의 숨을 막는 경계 침범의 장이기도 했다.
'가족의 사랑' '우리는 하나' '보살핌과 호의'라는
강력한 언어의 포장 아래 우리들의 속마음들은 쉽게 숨는다.
발견된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 모른척해왔다.
마치 열어보면 큰일 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깜짝 놀라면서.
사랑이 무겁게 느껴진 이유는
사랑이 본래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사랑에 무거운 것들을 잔뜩 끼워 넣어 그렇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는 사실 빈 통이다.
그 안에 우리가 어떤 행동과 가치를 담느냐에 따라
시대별로, 나라별로, 문화별로, 개인별로 다 달라진다.
우리의 ‘사랑’ 이란 단어 안에 담긴 집단·가문 중심 문화,
역할·기능 중심 문화, 경계 침범을 쉽게 허용하는 문화가
세대를 거쳐 굴러 굴러 눈덩이처럼 나에게 도달했다.
그 과거 세대의 잔재들까지 가득 싣고 온 사랑은
인생 전반에 걸쳐 나를 너무 무겁게 했다.
몇 번에 걸쳐서 그 가방을 내려놓아야만 했을 정도로.
그리고 덕분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이것이 정말 내 존재를 자유롭고 강하게 만드는 ‘사랑’인지,
정녕 내가 내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실된 가치로서의 ‘사랑’인 것인지 말이다.
잘못 라벨링 된 사랑은, 그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존재를 가두는 진정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금 우리 사회는
비로소 가부장적 문화에서 탈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다 민주적으로, 보다 여성 참여적인, 약자를 보듬는
진보적인 가치의 사회로 재편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즘 딸 선호 풍조나 아이들 중심 가족,
이런 몇 가지만 보아도 과연 우리가 진정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형태만 다를 뿐 기존 가치를 다른 형태로 계속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떠오른다.
대상은 다르지만, 구조는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명목으로 타인을 소유하고,
타인에게 나를 위한 역할과 기능을 요구하며,
우리가 정해놓은 가치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존재의 경계를 침범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결핍된 욕망 불안,
그것들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정교한 방식은
세대를 거쳐 은밀히 아직도 대물림을 반복하고 있다.
그것들은 또다시 눈덩이처럼 언덕을 굴러내려 가,
번져나가는 물감처럼 우리 사이에 스며들어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다음 세대를 향해
맹렬하게 폭력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제 그런 모습을 한 기존의 사랑이라는 것을
더 이상 내 사랑 가방 안에 담아 둘 수 없었다.
그 부피와 무게는 일찌감치 한계치를 넘어섰고
그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들조차
진짜 따스한 온기의 사랑인지,
겉만 폭신한 폭탄인지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견디고, 맞춰주고, 스스로 설득하며 버텨온 시간이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 마지노선에 다다랐을 즈음.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켜지던
그 무시하고 싶던 빨간 불은
마침내 경고음을 크게 울리며 터지고야 말았다.
부드러운 솜사탕 감촉의 사랑 덩이라 생각했던
가방 안 ‘사랑’이란 이름의 폭탄들이
굉음을 내며 연달아 폭발하는 바람에
사랑인 줄 알고 고이 간직했던 내 사랑가방이 박살 났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오래 눌러두었던 내 감정을 직면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나조차도 그때 ‘진짜 나’의 맨 얼굴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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