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이 : 사랑이라 믿었던 것의 속살을 만나다

사랑 반품 사유서

by 파랑새의숲


후폭풍 속으로


나는 ‘원래 그런 길’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 시도는 그리 과격하지 않았다.


나의 엄마에게, 이제 육아 휴직도 했으니, 내 살림은 내가 직접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 집에서 더 이상 일하지 마시고, 손님처럼 놀러 와 커피 한 잔 대접받고 수다떨며 놀다 가시라 했다.


시어머니께, 제가 너무 바쁘니 이제 전화는 아들에게 직접 하시고, 반찬은 보내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친정에서도 너무 많이 보내서 냉장고 자리가 없으니, 어머니 반찬 그리울 때, 제가 요청하겠다 말씀드렸다.


남편에게, 당신과 결혼해 성인으로 독립한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서 독립해 시어머니 휘하로 이적했을 뿐, 아직 우리는 진정한 성인이 아닌 느낌이라 했다. 그리고 출신 지역 문화가 달라 대화 중 오해가 자주 생기는 것 같으니, 내가 시댁과의 대화를 주도하지 않도록 아들인 당신이 직접 대화하는 게 맞겠다 했다. 어머니건 형님이건 이상하게 내게만 연락 하신다고. 그로 인해 서로 큰 오해가 자꾸 생기지 않느냐고.


처음엔 과격하지 않은 공손한 작은 부탁이었다.

나는 나의 이 요청들이,

그리 큰 토네이도가 되리라곤 처음에 예상치 못했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 부탁을 작고 가벼운 조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요청을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아니면 전혀 들어줄 필요가 없다 무시했거나.

어쨌든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불 같은 성격의 친정은 확대해석해서 길길이 날뛰셨고

-뭐? 내 딸 집인데 손님처럼 있으라고? 내가 남이냐??

시어머니는 가볍게 내 말을 못 들으신 척,

이상하게 하루만 지나면 리셋되셨다.

-아이고 그래 니 힘들겠다, 그런데 반찬 뭐 보내주꼬?

-니 언제 내려올 기고? 내가 보낸 떡 도착했나?

신랑은 골치 아픈지 아예 외면하여 취미 생활에 골몰하거나, 나를 비난했다

-우리 엄마가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참 못됐다.


방식은 사람 스타일에 따라 다양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결론은, 나의 요청은 고려되지도 않은 채,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요청처럼 묵살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게 단순한 오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 설명하지 못했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완곡하게 표현해서 요청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말을 부탁이 아니라 위협 신호로 읽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무시하며 듣고 있지 않았거나.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건 그들이 유지하고 싶은 기존 질서를 보호하는 기제다.

확신이 든 순간,

내 안의 죄책감이 조금씩 회수되기 시작했다.

죄책감은 내가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의 ‘원하는 나’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교묘히 내게 떠넘겨진 감정이었다.


그들이 내밀었던 사랑의 실체를 확인하자,

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번엔 작은 조정이 아닌, 명확한 경계 선언을 향해.


결국, 작은 부탁으로 시작했던 나의 발걸음에

고요 대신 거센 후폭풍이 우리를 덮쳤다.


예상했던 불편함이 현실이 되자,

나는 잠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들의 반응은 정말 사랑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맞춰주며 잠자코 있길 바랐던

그들의 욕망이 깨져서일까?


내부의 동요 – 흔들림과 각성


처음엔 불안했다.

“내가 너무했나?” “관계가 다 끊기면 어쩌지?”

특히 ‘좋은 딸’,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로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정은 점점 선명해졌다.

내가 잃은 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침묵을 지킬 때만 주어지던 조건부 승인권이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의 질서를 어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 독립은 그들의 불안을 건드렸고,

그 불안은 ‘사랑’이라는 포장을 벗고,

통제와 소유의 민낯으로 드러났다.


영국의 정신분석 전통과 심리 치료 임상 현장에서 애착이론을 창시했던 존 볼비는 이렇게 말한다.
“Conditional attachment is not protection; it is control. When the condition is broken, attachment is withdrawn.”
(조건부 애착은 보호가 아니라 통제다. 조건이 깨지면 애착은 철회된다.)
-존 볼비, Attachment and Loss (1969)




사랑의 민낯이 드러나다


내가 한계 임계점까지 갈 때까지 내 요청과 감정을 무시하다 최후의 통첩을 보내자 가장 먼저 들려온 건, 비난이었다.


-진짜 너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왜 이제까지 가만있다 갑자기 그러는 거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말들이었다.


아니, 난 갑자기 그러지 않았다.

내게 일어난 은밀한 침범에서

한 발자국씩만 물러서길 요청했을 뿐,

당신들에게 너무하지 않았다.

내 삶이 너무 불편해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요구였다.

반복적 무시로 문제를 키운 건, 그들이었다.


그들의 반응들은 내 결심의 정당함을 흔들기보다는,

오히려 중요한 질문을 만들었다.


이들이 나를 사랑해서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내가 ‘말 잘 듣던 사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걸까?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건 ‘내‘가 아니라

나를 통제하던 방식이었다.

그들이 보인 반응은, 나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그들 세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복원력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가족치료의 창시자였던 머리 보웬은 이야기한다.
“When one member of the family system changes, the system reacts to restore the previous balance.”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변하면, 시스템은 이전의 균형을 회복하려고 반응한다.)
-머리 보웬,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1978)


사랑 반품 사유서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 중 많은 것이,

실제 온기 가득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 소유욕, 불안을 덮기 위한 통제의 도구였다는 것을.


나는 사람을 반품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방식, 그 조건,

그 침묵 강요 위의 사랑을 반품하려 한다.


타인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사랑의 정의를 다시 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제껏 ‘사랑이라 불리던 것들’을 낱낱이 해체하고,

모녀갈등, 고부갈등, 부부갈등 속에 숨어 있던

‘침묵의 계약’과 ‘심리적 억압’의 실체를 드러내볼 예정이다.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먼저 가려내야만,

무엇이 사랑인지 앞으로 드러날 것이므로.


미국의 심리 치료사로서, 독성 부모(Toxic Parents) 개념을 대중화했던 수전 포워드는 말한다.
“Healthy love does not fear independence. Love that refuses independence is dependence and control in disguise.” (건강한 사랑은 독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독립을 거부하는 사랑은 의존과 통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 수전 포워드, Toxic Parents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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