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이 : 원래 그런 길, 이제 그만 걷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벗기며, 선로 이탈합니다.

by 파랑새의숲


사자에게 풀을 한가득 뜯어 놓아주고,
소에게 막 잡은 사슴을 내어주며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 앞의 상대가 정작 사자인지 소인지조차 모르면서
누가 누굴 사랑한단 말인가.


다들 원래 그래.


사실, 그 말이 제일 아팠다.

감정의 누수가 시작된 이래,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 사이의 관계가 힘들다고 토로하면,

적잖은 위로들을 빙빙 돌아 결국 머무는 종점지는 약속한 듯 언제나 같았다.


이 알 수 없는 위로가 더 깊게 나를 찔렀다.

내가 결별하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원래 그런 사랑의 방식’이었는지도.

그 말속에는 내가 겪는 고통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니

그저 묵묵히 감내하라는 침묵의 요구가 숨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아팠을까.



이제야, 나의 진짜 얼굴을 스스로 마주하다


나는 원래 잘 참는 사람이었다.

억울해도, 불편해도,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려 했다.

심리학을 그리 오래 공부한 이유도,

어쩌면 나를 힘들게 하는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잘 훈련된 대로,

그들의 시선을 먼저 생각했고,

내 감정은 꾹꾹 눌러 담았다.

그들이 내게 부여한 역할들 속에

나를 형태 없이 이리저리 구겨 넣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국 감정의 누수는 시작되었다.

처음엔 실금이 간 방둑처럼 조금씩 새어 나오더니,

이내 곧, 더 이상 막으면 댐을 무너뜨릴 기세로

강렬하게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에 대한 사회의 보통의 대답들이

그 물길을 더 세차게 만들었다.


-엄마들은 원래 다 그래. 근데 그게 다 널 위한 사랑이지.

-남편들이 다 그렇지 뭐. 마마보이 아닌 남자가 어딨어?

-마마보이가 그래도 불효자보다는 낫지 않니?

-어쩌겠어. 그냥 애들 보면서 사는 거지.

-다른 집들도 다 그러면서 살아. 그냥 대충 넘겨.


난 정말 이 대답들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나'를 다시 소외시키고 한 번 배제시키는

이상하게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위로처럼 느껴졌달까.

내가 말하는 그 '가짜 사랑'과 세트라도 되는 양 말이다.


우리가 이 불행을 평범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저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그들이 될 테니,

지금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자 라는 말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자, 이상한 합리화로 느껴졌다.


다음은 또 네가 침범자가 될 테니,

그때를 대비해 불편하더라도

지금의 너를 향한 그 침범들을 수용해라.


타인에 침범에 내가 힘들지 않게 되는 지점은,

내가 반대로 타인을 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침범하게 될 때이니 말이다.

돌려먹기도 아니고, 이 무슨 해괴한 메커니즘인가.


무엇보다 난,

“원래 그렇다”는 말로 침범이라는 폭력의 형태를

최고 형태인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둔갑시켜

내 안에 하나의 옵션으로 저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똑같이 그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을 씌워

다른 사람들에게 휘두르게 될 것이었으므로.



사랑이라는 가면을 벗기며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채식을 선언한 주인공에게

가족들이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 한다.
가족의 사랑과 염려라는 이름으로,

단체로 폭력을 가하는 그 장면이다.


사랑은 언제든 그렇게 ‘정상’이라는 옷을 입고

폭력으로 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한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원래 그래’라는 말로 덮는다.


그런 사랑의 변장에서 자유로우려면,

우리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이전에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며 마주 보아야 한다.

기능이나 역할이 아닌 ,

그 뒤에 숨은 사람을 보아야 진정으로 서로 닿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기능의 총합이라 느껴졌다.

착한 딸, 괜찮은 며느리, 헌신적인 아내, 완벽한 엄마.

그 모든 역할을 잘 수행하는 그 총합이 '나'라고 인정받았고,

이제까지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모두가 원래 그러하다고 하듯이,

그 방식대로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사랑받고 또는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다고

나 자신에게 '가짜 위로'를 스스로 제공하면서.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 사랑이라는 옷을 갈아입은 것이었다.


문제를 알면서도, ‘원래 그래’라며

정상처럼 포장하고 침묵하는 암묵적인 시선들.

폭력적인 침범들의 총합을 사랑이라고 묶는 시도에

의심조차 품지 않는 수많은 방관들.

그렇게 우리 모두 무거운 현실에 묶여있길 바라는 것 같은

사회적 문화적 합의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그 사랑들에서 탈퇴하겠다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그리고 그들 자신조차 기능 안에

단단하게 가두는 관계의 방식으로부터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별하겠다고.


자발적으로 택한 험한 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랑의 방식을 떠나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문제는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연결된 방식이었다.


경계침범과 상대를 기능화하는 수단화를

‘원래 그런 방식'이란 평범한 말로,

당연하게 사랑이라는 범주에 묶으며

서로를 은밀히 가스라이팅 하는 방식.


나는 그렇게 원래 그런 길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이미 잘 닦여진 그 선로를 이탈하기로 했다.

물론 새로운 길은 좁고 험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길보다는 숨이 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처음부터 텅 빈 공백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말속에 누군가 억지로 담아 넣은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비워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빈자리에 다른 것들을 담기로 했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감정들, 따뜻함만 간직한 연결,

그리고 서로의 존재가 연결되어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방식.


하지만, 잘 닦인 길을 이탈한다는 건
절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그 선택은,

사랑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던 욕망들의 민낯을
또 한 번 샅샅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다음 역,

상상 못 한 거센 후폭풍과 비바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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