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이 : 저, 이제 사랑받고 싶지 않아요

기존 사랑 멤버십, 과감히 탈퇴합니다

by 파랑새의숲


빨간 불이 켜졌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사랑이라는데, 나는 점점 더 숨이 막혔다.

정말이다.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이제 사랑받고 싶지 않다.

아니, 이제 그런 사랑은 그만 받고 싶다.


나를 숨 막히게 하는 보살핌과 관심,

받을수록 커지는 죄책감을 등 뒤에 무겁게 업고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런 사랑은 이제 거부한다.

그 방식을 거절하기로 결심하는 데만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랑이 왜 이리도 힘들지?

보살피고 걱정하는 것이라는데,

그 큰 사랑을 받을수록 왜 나는 무기력해지는 걸까?


수많은 시간을 헷갈렸다.

자책하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러다 오랜 세월을 지나, 한 의심의 지점에 다다랐다.


아마도, 이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 아닌가?

혹시, 사랑을 가장한 침범이나 폭력의 일종은 아닐까?


이름은 사랑인데, 내가 느끼는 것은 폭력의 한 종류였다.

이것을 사랑이라 여긴다면,

결국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에 얹혀 있던

의무와 침범, 통제와 숨 막힘을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반복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고리를 끊어야 했다.

그것들에게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탈퇴 목록 1] 착한 딸 콤플렉스


엄마의 사랑에는 늘 조건이 있었다.

딸로서의 나를 증명해야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이었다.


엄마 말을 거역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착한 딸,

엄마가 슬프면 위로하고 편이 되어주는 다정한 딸.

가장 친한 친구도, 상담사도,

때로는 엄마의 부모 역할까지 대신해야 하는

극한 감정 노동의 엄마의 외동딸.


어린 딸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었다.

엄마가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우리 딸 착하다, 역시 내 딸이네.”

그 한마디와 다정한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


거부하거나 싫은 내색을 보이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못된 딸이 되는 억울한 굴레.

사랑을 받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라면 이제 그만해야겠다.


이제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

착하고 좋은 딸로 인정받지 않아도 이젠 괜찮다.

나는 그 무기한 ‘모녀간의 계약’을 끝내기로 했다.




탈퇴 목록 2] 가족 서열 꼴찌, 며느리


결혼 초, 주변 고부갈등 사례들을 보며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도대체 왜들그래? 다 같이 잘 지내면 되잖아?

난 절대 안 그럴 거야. 시어머니랑 잘 지낼거야.


하지만 그 결심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설탕처럼 녹아내렸다.


결혼을 통한 시댁으로의 편입.
그리고 새로운 가족 안에서의 새로운 사랑과 보살핌.

그 새로운 가족적 가치 아래,
내가 맡은 며느리라는 새 역할.

그러나 그것은 난이도 최상 등급,
기존 가족의 굴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심장이 쿵쾅대는 병이 생겼다.

연휴가 지나면
남편이 미친 듯이 미워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놓고 구박하는 사람이 없는 것, 그게 더 문제였다.

은밀한 침범과 소외 속에서,
나는 시댁의 서열 꼴찌였다.


‘나’는 사라지고,
‘며느리’, ‘아들을 대신 챙기는 여자’, ‘손주들의 보모’라는
세 개의 기능만 갖춘 껍데기 인간으로

덩그러니 혼자 처연히 남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사랑과 관심’이라는 거죽데기를 뒤집어쓴
나에 대한 통제와 자잘한 침범들을

오히려 감사하다며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였다.


-시댁을 잘 보살피는 며느리인지,

-아내로서 아들을 잘 챙기는지,

-엄마로서 손주들을 잘 키우는지,

-그 역할들을 잘 수행하는지


사방에 cctv가 켜진 듯이

끊임없이 감시받는 듯한 느낌에 숨이 막혔다.


말로는 사랑과 보살핌이라는데,

거기에 정작 따뜻한 온기는 없었다.

역할 의무들과 평가만 있었을 뿐,

'나'는 사라진 채, 서열 꼴찌로 뭔가를 끊임없이 해내야 했다.


남편과 시댁은 말했다.


우린 가족이잖아.

너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니

이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

어렵게만 느끼지 말고 이 집에 기꺼이 스며들어라.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했다.

나를 위한 것이라는데 나를 위하는 것 같지 않은 반찬들,

나를 위한 것이라는데 나를 배려하지 않는 안부 전화,

나를 위한 것이라는데 나를 위하지 않은 선물.

가족이라는데, 이상하게 나만 소외되는 느낌.

나는 남편과 그 아이들을 시댁과 연결시키는

비둘기나 연락책인 메신저에 불과해 보였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관계엔 ‘나’는 없고, 오직 역할만 있었다.

나도, 좋은 며느리라는 직함을 지키기 위해

내 감정들이 혹여 새어나갈까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무에서도 과감히 물러나기로 했다.



탈퇴 목록 3] 남편의 대리자


남편의 사랑은 종종 내 어깨 위에 얹힌 기대와 의존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였을까.

내가 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기도 했으니.


함께 손잡고 걷기로 한 길이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어린 시절 가족들을 등에 짊어지고 와서

그들의 간섭 무대를 우리 가정으로 무대만 옮긴 어린아이들이었다.

왁자지껄 모두가 우리 안방에 모여

자신들의 일방적인 사랑을 관철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등 뒤에 업힌 어머니를 내려놓지 못했다.

자신 인생의 유일한 트로피인 멋진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와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채, 죄책감과 어머니를 함께 짊어진 남편.

자신 대신 자신의 가족도 진심으로 보살피고

살갑게 응대해줄 것을 은밀히 요구했다.

내가 그 짐을 내려놓으라 할 때마다 그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럼 어떡해. 우리는 가족인데.”


그 말 뒤에 숨은 에너지 소모의 대가는 무척 컸다.


나는 이미 여자가 있는 남자와 결혼한 듯한

이상한 기분으로 외로워하며 살다가,

어느 날 결심했다.

이 삐뚤어진 사랑, 시어머니-아들 그리고 남편-나

이 모호하고 이상한 정신적 삼각관계를 과감히 정리하기로.



탈퇴 목록 4] 분신 육아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라고,

그들은 나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은

여전히 나의 욕망으로 그들을 붙잡고 있었다.


공부를 잘했으면, 영어도, 수학도, 방도 깔끔하게,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항상 명랑하게,

슬퍼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렇게 완벽하게.


나는 그들을 나의 연장선처럼,

내 수족처럼 움직이게 하려 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났다.


내가 받은 사랑이 숨 막힘이었듯,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숨 막히는 통제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내 욕망이었다.

나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강하게 투사하고 있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내 욕망으로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이 나로부터 자유롭게 멀어질 그날을 준비해야 함을 느꼈다.

내가 그들로부터 떠나왔듯,

그들도 내게서 떠나갈 그날을 허락하고 대비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그들을 나의 분신 또는 나의 확장된 자아가 아니라,

'내게 찾아온 조그만 손님'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시각과 구체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이었다.

말그대로, 아이들은 내 것이 아니니까.




선로 변경, 리모델링을 위한 과감한 철거


“저, 이제 그런 사랑,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요.”


그 모든 것을 위해 제일 먼저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물론, 그 후폭풍과 과정이 결코 만만했던 것은 아니다.
그 사랑은 애초에 내가 받고 말고를
선택할 수 있었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기에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랑은 진정 ‘나를 위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그렇게 나는 부모, 시댁,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관계를 재설정하느라 기존 관계에서 과감히 탈퇴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사랑받기를, 또는 인정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엄청난 오해와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에,
내가 의지할 곳은 내 두 발과 내 자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심했다.
기존의 그 사랑들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사랑을 대가로 나를 옭아매던 그 관계들에서
전면 후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모든 탈퇴와 떠남은
관계를 버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관계를 더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해,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이것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향한 선로 변경이었다.

진짜 사랑을 위해, 숨 쉴 수 없는 사랑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각자의 숨을 더 크게 쉴 수 있기 위함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침범하고 구속하며
나의 세계로 편입시켜 날지 못하게 발목을 묶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가 합쳐져
더 큰 세계를 공유하는 새로운 사랑 방식.
나는 그 방식을 새로 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계 맺는 방식은 버려야 했다.
재회를 위한 떠남과 이별.


탈퇴를 감행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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