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피로, 그 이중주
이봐, 나한테 빌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어. 내가 '이문이다.'라고 알려 준들, 나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나의 충고를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어차피 너 스스로 결정해야 해. 내가 널 도와 주려 해도 네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아.
— 미하엘 엔데, 『자유의 감옥』중
<모모>라는 소설의 작가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의 단편소설 <자유의 감옥>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감옥과 자유라니, 서로 정반대의 개념 아닌가?
그러나 막상 내가 ‘비규격의 삶’을 향해 한 발 내딛자,
그 말의 진정한 뜻을 알 수 있었다.
자유의 모습은 철저하게 '비규격'이라는 것을,
수많은 문에 둘러싸인 신세로 망설여야 하는 일이며,
그 안에서 결정을 감내하고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것임을.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았다.
아파트라는 규격은 나를 가두었지만
동시에 나를 편안하게 지켜주던 틀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독주택이라는 선택은,
그 편안한 틀을 스스로 걷어내는 일이었다.
내가 어떤 땅을 고를지,
어떤 구조를 허물고 무엇을 남길지,
심지어 어떤 빛이 들어올 창을 만들지까지,
모든 것은 나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자유란, 결국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무게가 바로,
미하엘 엔데가 말한 ‘자유의 감옥’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자유인의 얼굴을 찾아간다는 말은 멋있지만,
사실 그 자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유는 내게 편안함이나 편리함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위한 수업이
바로 ‘반셀프 인테리어’였다.
⸻
집안을 돌아다니며 기존 주인의 흔적이 남은 집을 바라보니, 깊은 한숨이 나왔다.
심란한 아트월, 어색한 붙박이장, 검붉은 현관 타일, 낡은 문,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무늬의 벽지.
원치 않는 곳에 세워진 가벽, 어색한 화장실 변기와 싱크대 위치, 현관문과 거실 곳곳의 불편한 구조와 전기 콘센트 위치까지.
아파트와 달리 전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 그 모두가 낯설게 다가왔다.
“이건 싫다. 이것도 바꾸고 싶다. 저건 정말 용서할 수 없다.”
바꿔야 할 것들을 적어 내려갈수록
자유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자유를 ‘무한히 고를 수 있는 권리’라 생각했지만,
곧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자유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비용이라는 제약 속에서
끝없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문이 많은 감옥이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아름다운 2층 집은
현실 앞에서 차갑고 낯설게 다가왔다.
앱을 켜고 구석구석 공간 도면 작업을 시작해,
가장 비슷한 가구들을 배치한 뒤에
가상으로 집 안을 머릿속으로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2D 선들이 3D 공간 속에서 살아나는 순간,
약간의 감이 잡히기도 했지만 머릿속의 것들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자유는 새로운 기술과 낯선 도구 앞에
나를 다시 초보자로 세우는구나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모든 선택지는 모조리 주관식이구나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뎌내는 과정조차
내가 선택한 길의 일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바를 대신해 줄 수는 없으니까.
⸻
반셀프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또 다른 감옥의 문이 열렸다 느낀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과 직접 접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정별 견적서를 받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제시한 액수를 확인했다.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하고 흥정하려면,
그들의 업무를 알아야 하니 사전 공부는 필수였다.
그리고 내 요구를 하나하나 설명하며
그들의 눈빛과 반응을 살피는,
고되고 피곤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진짜 어려운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낮은 견적을 미끼로 말을 바꾸는 사람,
사소한 이익 앞에서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나는 분노했고, 지쳤고, 때로는 무력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갔다.
무엇으로 움직이는 사람인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질문을 붙들고, 때로는 실패하면서,
결국 나의 집을 함께 지어갈 사람들을 선택해 나갔다.
그리고 집이 완성될 때 즈음, 깨달았다.
이 과정의 가장 큰 성과는 집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이라는 점을.
믿음이 가던 사람은 끝까지 돈을 떠나
내 집에 애착을 가지고 함께해 주었다.
나처럼 공간의 중요성을 믿는 이들이었다.
반면 겉으로는 스마트해 보이고
합리적인 조건을 내세웠으나,
‘돈’에만 매달린 이는 결국 끝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했지만
그 ‘충실’의 의미가 나와는 전혀 다른 경우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은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을 믿고 신뢰할 것인지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다행히도, 나의 직감은 이성보다 정직했다.
믿음이 간 사람과 함께했을 때, 결과는 언제나 더 좋았고 마무리는 따뜻했던 걸 보니 말이다.
⸻
끝없는 선택과 책임이라는 모습의 자유,
그 감옥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첫 발을 떼고 있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성화 된 주입식 교육,
객관식 문항과 틀이 잡힌 규격 안에서
안전하게 자라오던 나는,
내가 살 집을 만드는 <단독주택 이주 프로젝트>가 꼭 단기간에 결정과 책임을 훈련시키는 속성 프로그램 같이 느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자유는, 달콤한 해방이 아니라 무거운 감옥이라는 점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자유라는 것은 꼭 내가 언제든 원하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나의 권리인 줄만 알았지, 그 뒷면이 이리도 많은 선택과 그 책임을 내게 덤터기 씌우는 구조인지는 몰랐다.
아니, 말로만 들어서 이해했었겠으나,
내 몸으로 체득한 진실은 아니었다.
언제나 내게 삶은 아파트같이 편리하게 주어진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옥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더 나다운 방식으로 서 있는 법을 새로 배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남이 세워준 틀을 처음으로 부수고 진짜 나를 만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의 초입에 들어간 것이다.
문 저편에 뭐가 있는지는 문을 열어 봐야만 알 수 있어. 하지만 동시에 다른 문 뒤에 뭐가 있는지 아는 것은 포기해야지. 왜냐면 나머지 문들은 잠겨 버리니까.
— 미하엘 엔데, 『자유의 감옥』
#자유의감옥
#비규격의삶
#선택과책임
#심리적독립
#단독주택이주프로젝트
#삶의결정
#자유의무게
#철학적에세이
#인테리어일기
#심리학에세이
#삶의훈련
#미하엘엔데
#모모작가
#삶의문턱
#나를만나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