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큰 제약 – 예산·시간·노동
우리는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상황 안에 있다.
Nous sommes libres, mais libres dans une situation.
–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실존주의 철학자
집을 고친다는 건, 또는 짓는다는 건,
도면 위에 그린 계획처럼 매끄럽게 흘러가는 일이 아니다.
특히 모든 것이 규격화된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이라는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남들의 안방, 남들의 화장실 크기, 부엌과 싱크대의 위치, 콘센트 자리까지—
사소한 그 모든 것이 달랐다.
그래서 나는 단.독.주.택.이라는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어느 집도 똑같지 않다는 것, 집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것.
“단독주택 어때요?”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미래의 나의 집'이 어떨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자신만의 집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결국 단독주택이란 결코 똑같은 집이 존재하지 않는,
그룹화될 수 없는 말 그대로 비규격의 영역이였다.
그러니 물어볼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다.
내가 직접 공부하고, 스스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진행되면 좋으련만,
그 어느 것 하나,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예산은 삐끗거렸고, 일정은 어긋났으며,
중간에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변수들은
공사 계획과 자재 선택을 계속 바꾸게 만들었다.
노동은 번번이 나를 멈춰 세웠고,
최종 결과물은 늘 내가 처음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일단,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벽을 뜯으니 곰팡이 자국이 드러나 곰팡이 제거 공정이 추가되었다.
천장 박스를 뜯자, 안에 있던 단열재가 문제라 다시 손을 봐야 했다.
예쁘게 골라둔 등은 아파트와 달리 천장이 낮아 설치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천장 높이가 달라 기존 커튼마저 맞지 않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예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음에 쏙 든 자재는 늘 가격표 앞에서 멈추게 했다.
주방 타일, 조명, 창호… 내가 고른 것과 실제로 들여놓은 것 사이엔 언제나 간극이 있었다.
현실과의 타협은 필수였고,
그때마다 ‘이 집은 점점 내가 원하는 얼굴에서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뒤따랐다.
시간의 압박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사 들어가야 하는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공사는 절대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안에 끝난다”는 말은 늘 미뤄졌고, 달력 위 일정은 무력해졌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결국 직접 일을 붙잡았다.
현장 감독을 자처하며 내일 공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오늘 작업이 끝나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손에 쥔 공구는 기대와 달리 더디게만 움직였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초조함은 쌓여 갔다.
벽지를 뜯으면 금세 벽이 드러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본드와 곰팡이, 울퉁불퉁한 시멘트가 겹겹이 숨어 있었다.
페인트칠도 마찬가지였다.
영상 속처럼 매끈한 벽은 나오지 않았고, 실제 벽에는 얼룩과 붓자국이 남았다.
그 차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고스란히 내 눈앞에 있었다.
결국 나의 공간을 새로 만든다는 건 ‘내 뜻대로’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돈도, 시간도, 노동도 자꾸만 내 계획을 비껴갔다.
결과물은 내가 처음 그린 그림과는 달랐다.
그러나 나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바로 그 어긋남을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만의 집이라는 꿈이 현실이 되어 간다는 것을.
#단독주택리모델링
#단독주택
#리모델링
#비규격의삶
#조건부자유
#예산의전쟁
#시간의압박
#노동의기록
#삶의현실
#집짓기이야기
#심리학적통찰
#실존철학
#사르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