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 속의 자유

내가 선택한 ‘나만의 이유’ - 자유

by 파랑새의숲
주거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구성하는 심리적 장치다.
— 환경심리학자 Irwin Altman, The Environment and Social Behavior (1975)


아파트에 살 때는 몰랐다.

집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것을.


층간소음 때문에 편안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아파트라는 집은 늘 편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해결되는 것이 당연했다.


보일러가 멈추면 관리실에 전화 한 통,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누군가 와서 수리해 주었다.
나는 편리함 속에 살았고, 그 편리함은 공기처럼 익숙했다.


그러나 단독주택에 들어온 순간, 그 공기가 사라졌다.

보일러가 멎으면 내가 직접 기사님을 불러야 했고,
장마철 곰팡이는 오롯이 내 손으로 닦아내며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마당의 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라났고,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었다.

아파트라면 ‘누군가’가 대신 처리했을 일들이
이곳에서는 모두 내 몫이었다.


처음엔 그 불편함이 버거웠다.
왜 모든 게 다 내 손에 달려 있어야 하는 걸까.
왜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걸까.


불편함은 인간을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전환시키는 경험이다. 불편이야말로 주체적 행동을 자극하는 환경적 자극이다.
— 환경심리학 논문 요약 (Edward T. Hall, The Hidden Dimension, 1966 )



처음엔 장마철이면 벽지에 검은곰팡이가 피어올랐다.
아파트였다면 관리실이 처리해 주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나는 희석해 직접 문질러야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며칠 후 다시 올라오는 얼룩을 보며 허탈했지만,
그 얼룩은 분명히 말했다.


“이 집은 네가 책임져야 할 공간이다.”


한겨울 새벽, 난방이 멎어 방 안이 금세 얼어붙었을 때,
나는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보일러를 보러 갔다.
차갑고 답답한 공기 속에서

드라이기로 보일러 배관을 녹이며
나의 필요를 내가 직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불편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동시에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살아 있는 주체로 서 있었다는 것을.


마당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잡초는 틈새마다 고개를 내밀고,
풀은 눈에 보이는 속도로 자라났다.

며칠만 방치해도 집은 금세 황폐해졌다.


허리를 굽혀 잡초를 뽑고,

땀을 흘리며 낫을 휘두르며
나는 깨달았다.
이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숨 쉬는 생태계이며, 나 또한 그 일부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오히려 서서히 그 불편함에 익숙해지고 있다.

불편해야만 누릴 수 있는 자유들이 있으므로.


어쩌면 불편은 감옥이 아니라,

자유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자유의 무게


돌이켜보면, 아파트의 편리함 속에서 나는 사라져 있었다.
결정할 것도, 책임질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 집에서는 불편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스스로 묻고, 선택하고, 감당해야 했다.
그 과정은 불편이 아니라, 나를 세우는 힘이었다.

책임은 곧 나의 자유였다.


불편은 불완전함의 증거가 아니었다.
살아 있음의 징표였다.
누군가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건 두려웠지만,
그만큼 내 삶은 더 분명히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이제 경험을 통해 안다.

편리함은 나를 편하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지워버린다는 것을.
불편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또렷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불편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
그 자유는 여전히 무겁고 귀찮고 벅차지만,
그 무겁고 귀찮은 자유가,

오히려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누군가 대신 관리하는 공간에서 사람은 소비자일 뿐이지만, 스스로 돌보는 공간에서 사람은 주체가 된다. — 클레어 쿠퍼 마커스 (환경심리학자), House as a Mirror of Self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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