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결정하는 일, 곧 나를 다시 짓는 일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자아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A house is not just a building; it is a mirror of our identity and self-image.
— 클레어 쿠퍼 마커스, House as a Mirror of Self (1995)
아파트에 살 때는,
집이 곧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천장이 조금 더 높고,
창문이 남향인지 북향인지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규격을 갖춘 이른바 '국평' 집들은 비슷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내게,
그 비슷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구의 집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공간 속에서
나는 마치 무표정한 군중 속에 섞여 있는 한 사람처럼 살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아파트가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집일 수도 있다.
네모 반듯한 편리함이 있는 공간.
그러나 내겐 그렇지 못했다.
편리하지만 편안하지 않은,
나를 조금도 닮지 않은 나의 집.
그 공간이 기존의 거주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집은 나를 정말 많이 닮았다.
나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나서 그런가.
살짝 기울어진 선반, 덜 마른 페인트 자국,
몇 번이고 고민하다 고른 살짝 언밸런스한 조명빛.
어설프고 미완성 같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들이 보기엔 흠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모두 내가 살아낸 시간의 경험적 얼굴이었다.
거실 한쪽 벽에는 아직도 붓자국이 엇갈린 채 남아 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전문가가 칠했다면 훨씬 매끈했을 테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얼룩을 바라보며
묘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건 내가 직접 살아낸 흔적,
완벽보다 정직한 나의 흔적이니까.
방 안의 선반도 약간 기울어져 있다.
수평을 맞추려 애썼지만, 끝내 몇 도쯤 어긋나고 말았다.
처음엔 마음이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 기울기를 내 삶의 은유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도 완벽하게 수평일 수는 없지.
약간의 기울어짐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사는 거니까.”
그런 어쩔 수 없는 합리화에서,
오늘도 완벽에의 강박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조명을 켜면 집 안 가득 노란빛이 공간을 감싼다.
흰색 불빛보다 아늑함과 포근함을 택했던 나의 성향이
그 주방 빛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창틀 너머 풍경 역시,
내가 선택한 창의 크기와 방향이 빚어낸 결과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웃집들은 어느 하나도 똑같지 않았다.
겉모양부터 마당의 풀과 나무 관리까지,
집은 구석구석 주인의 성향과 삶을 드러낸다.
집이 하나의 얼굴처럼, 외모도 성격도 제각기 다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마치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 있는 사회처럼.
그 많은 집들은 결국,
그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의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내 집 역시, 천천히 나의 얼굴이 되고 있었다.
완성형이 아닌, 아직 진행형으로 말이다.
지인들이 집에 찾아와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은 정말 생긴 게 주인 닮았네.”
규격 아파트에서는 듣지 못했던 말.
비규격의 집이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지만,
단독주택 지구에 살다 보니 정말 그렇다.
집집마다 외부부터 내부구조까지 모양이 다 다르고,
그 안에 사는 가족을 만나보면
정말 집이 주인을 닮은 경우가 많다.
돌이켜보면,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 나는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야 했다.
그때의 나에겐 집이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나를 다른 사람들과 같은 틀 안에 넣어
내 존재를 희미하게 만드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실내 인테리어만으로는
내게 안락한 공간을 만들기에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의 집은 나를 참 많이 닮았다.
흠집과 흔적, 선택과 후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집은 결국 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이 집을 고치며, 동시에 내 얼굴의 모양을
더듬어 찾아가는 중이었구나.
혼자 중얼거린다.
어쩌면 이번 단독주택 리모델링은
단순히 주거 형태를 바꾸기 위해
벽과 지붕을 새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얼굴을 다시 그려내는 여행이자,
나 자신을 리모델링하는 길이었는지도.
집은 인간의 내면 구조를 상징한다.
지하실은 무의식을, 다락은 의식을,
그리고 현관은 자아와 세계의 연결을 드러낸다.
The house is a symbol of the human psyche.
The cellar corresponds to the unconscious,
the attic to the conscious,
and the entrance to the connection between self and the world
— 카를 구스타프 융,『인간과 상징』(Man and His Symbols, 1964),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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