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모양이 바뀌니, 삶의 모양도 달라졌다 - 1

바뀐 아이들의 삶, 달라진 나의 삶

by 파랑새의숲
엄마가 아이와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엄마가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경험이 아이의 자율성을 길러준다.

-도날드 위니콧, 영국 소아정신과 의사 · 정신분석가


이사 후, 나는 이 말을 몸으로 체험했다.


과거 아파트에서의 일상은 늘 조심스러웠다.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소리 내 웃어도
나는 “조용히 해, 뛰지 마!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학교 마치고 돌아와 밥 먹고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몸을 쓰며 놀고 싶어 했지만,
6시 이후에는 제발 조용히 하자는 아랫집 눈치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결국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앉히고,
버티다 못하면 TV와 핸드폰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걸핏하면, "숙제했어?" "할 거 빨리 방에 들어가하라고!"라고 소리치는 게 내 일이었다.


9시가 되기도 전에 8시 반부터는

아이들을 빨리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급했다.

걷지 않아야 층간소음이 생기지 않으니까.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 내게
집은 ‘쉼’의 공간이 아니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대기실처럼,
밥 먹고 잠만 자는 곳에 불과했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늘 억눌려 있었고,
나 역시 그 답답함 속에 갇혀 지냈다.


숨을 쉬기 위해, 힐링하기 위해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단 집을 떠나야 했다. 집은 전쟁터였으니까.


겨울이 오면 상황은 더 혹독해졌다.
차가운 날씨에 아이들을 밖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다른 곳들을 데리고 다니자니 피곤하고 돈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실내에만 있자니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뛰지 마라, 그러지 마라, 조용히 해라, 치워라,
어지르지 마라!”


나는 매일같이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그들답게 울고 싸우며 에너지를 분출했다.


이제 점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서로의 공간이 계속 겹치는 아파트 동선에서 서로 자기 영역 침범하지 말라며 싸워댔고, 결국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가장 불편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이러다가는 곧, 아이들 모두 각자 방문 걸어 잠그고, 관계가 단절될 우리 가족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했다.


쉬어야 하는 집이,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공존이 가능한 집


그러나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뒤,
삶은 통째로 뒤바뀌었다.


일단 마음껏 뛰어도 된다.
좀 크게 말을 해도 괜찮고,

자기 발걸음을 계속해서 단속할 필요가 없다.
층간소음으로 누군가 눈살 찌푸릴 일이 없으니
내가 아이들을 막아설 이유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사지를 제 멋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사 오면서 TV를 아예 없애버렸다.
아파트에서는 전적으로 엄마인 '나의 편의' 때문에 TV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뛰지 말아야 하니까, 그냥 놔두면 내가 너무 힘드니까,

계속된 요구들에 도통 내가 한순간도 쉴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TV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야 했지만,

새로운 집, 공간, 동네에서는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나는 아이들을 그냥 심심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몸을 배배 꼬던 아이들이
얼마나 지나자 스스로 놀이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첫째는 생전 안 보던 책을 붙잡았다.

이사 가기 전까지 읽은 책은 곤충백서 그림책이 유일했다.

그런 첫째가 너무 심심하니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그 책을 너무 읽어 지루한지 다른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책 읽다가 지루하면 종이를 접어 온갖 팽이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수십 가지 팽이들로
동생들과, 동네 친구들과 팽이 대결을 벌였다.


둘째는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북에 낙서를 하고 색을 칠하다가
혼자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심심하면 마당으로 나가
개미를 관찰하고 흙을 파헤치며
매일 새로운 ‘발견’을 했다.


우리 집 냉장고 북어를 들고나가 앞집 고양이를 따라다니더니, 결국 그 고양이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셋째는 동네 친구들과 하루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옆집 강아지를 쫓아다니고,
앞집 언니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갔다.


친구네 집에 걸어가기가 너무 힘들다며,

예전부터 그리 가르쳐도 잘 못 타던 두 발 자전거를

혼자 스스로 연습해서 기어코 터득해서 타고는

온 동네를 누비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쓸데없는 잔소리로부터 해방되었다.


아예 잔소리를 안 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 나이나 발달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그들의 행동이나 성향을 환경에 의해 억압받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동네 아이들을 몰고 와 집이 왁자지껄할때면,

나는 혼자 슬쩍 음료수를 챙겨

마당이나 2층 구석으로 도피한다.

잠시라도 아이들과 그렇게라도 공간이 분리되니,

정말 살 만했다.


아이들과 잠시 떨어져 회복 가능했고, 이것은 엄마들의 정신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아이들의 자율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집이 시간을 좀 더 오래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따뜻하게 싸우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쉼’과 ‘힐링’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학교 방학 기간은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고, 물총 놀이를 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으로, 주말은 온 가족이 집에서 푹 쉬는 '힐링 타임'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우리는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었다.


힐링하러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삶.

이것이 가지는 의미가 가장 컸다.

집이 베이스캠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유로워지자, 내가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의 발걸음과 소리를 막느라
지쳐 쓰러지는 엄마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를 커피 한 잔 하며 지켜보며,
내 삶을 쓰며 매 순간 회복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마당에서 요가를 하고,
햇살 가득한 2층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마당 한편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수확하고,
햇살 가득한 썬룸에서는 아이들과 책을 펼친다.


그리고 이제 육아에서 조금 해방되니,

어떻게 남편을 도와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나의 단절된 경력과 재능을 어디에 써 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엄마나 아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의 베이스캠프, 집


아이들이 집과 동네를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동안,
나 역시 집을 내 삶의 쉼터로 되찾아가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의 모양이 바뀌자, 제일 먼저 아이들의 삶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달라지니, 엄마인 내 삶 역시 달라졌다.

엄마인 내 삶이 달라지니, 남편의 삶도 덩달아 완전히 변하고 있다.


공간은 결국,
가족의 삶의 모양을 새롭게 빚어내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는 철학이나 도덕보다 결국 지리적 문제로 귀결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프랑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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