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모양이 바뀌니, 삶의 모양도 달라졌다- 2

바뀐 부부 사이, 달라진 가족의 삶

by 파랑새의숲

모양이 바뀌니, 삶의 모양도 달라졌

집은 우리의 기억과 꿈을 담는 그릇이며, 삶의 가장 깊은 친밀성을 품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The Poetics of Space, 1958), 프랑스 철학자, 문학가


공간의 모양이 바뀌자, 부부사이가 달라졌다


내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꿈꾸면서

내부 공간 구획 중 가장 주의 깊게 신경 쓴 점이 있다.


아이들과 부부의 공간이 분리될 수 있는가이다.

항상 그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그래서 이사 오는 집에는 부부 공간을

아예 2층으로 독립적으로 분리시켰다.


나는 아이들이 어지럽게 늘어놓은 장난감들,

물건들 때문에 종종, 아니 자주 화가 나곤 했다.


내 멋대로 정리하거나 치워버리고 싶은 자잘한 것들도

아이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물건들이자 작품인지라,

마음대로 갖다 버리거나 내 마음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질서를 무작정 참아내려니

내가 너무 힘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 둘만의 공간이 없었다.

안방은 너무 좁았고, 아이들 방과도 너무 가까웠다.

때로는 안방조차 아이들 놀이방으로 확장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가 이사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이들의 공간과 공용 공간, 그리고 부부의 공간을 분리해서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내부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 남편은 집에만 오면 답답해했다.
어질러진 좁은 공간, 아이들의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늘 화나고 지쳐 있는 아내.


그는 힐링을 하러 집 밖으로 자주 나갔다.

아내인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힐링이 아닌 버거움인 모양이었다.

본인도 지칠 대로 지쳐있는지라,

아내를 위로할 처지가 되지 않는 듯 보였다.


주말 새벽이면 자전거를 들고 힐링을 위해 나갔다.

물론 아침까지 돌아와 육아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의 눈은 아직도 힐링이 모자라 보인 듯

퀭한 피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직장생활과 아이들 육아로 꽉 찬 일상에

휴식이 없는 그 답답한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그런 횟수가 점차 늘어가자,

나는 이렇게 힘든 나를 버려두고

본인만 힐링하러 나가는 남편을
거의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파트에 살던 남편과 나의 삶은 함께한다기보다는

종종 병렬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출근과 퇴근, 집안일과 양육. 정해진 역할이 반복되며
마치 각자의 트랙을 달리는 주자처럼 살아갔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삶은 자주 교차하지 않았다.

물론 같이 동행하며 삶을 공유하고는 있었으나,
서로를 진정으로 맞대고 마음을 나누기보다,
각자 할 일만 해내는 사이로 변질되고 있었다.



부부로 돌아온 시간


그러나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뒤,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상하게도 남편이 집에서 나가질 않았다.

주말이면 새벽부터 자전거를 들고나가야 할 사람이
이젠 집이 다른 어느 곳보다 편하다 보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바깥 약속을 잡던 사람이
이젠 꼬박꼬박 집에 들어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와?

싶을 정도로 칼퇴를 기다리다 달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 저녁 식탁은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
아빠가 꼭 참여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면 온 가족이 나가 함께 뽑고,
장마철에 누수가 생기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았다.
방수 페인트를 발라가며 고치기도 한다.


출퇴근 속 밥 먹고 잠자는 곳으로만 여기던 집이
이젠 애정과 책임을 기울이는 공간이 되었다.

처음 단독주택으로의 이사를 격렬히 반대했던

남편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살아보니 편안하고 좋은지,

이제 투덜거림이나 불편의 소리는 쏙 들어가고

집이 제일 편하다며 어딜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만의 공간이 생겼다.
아이들이 1층에서 뛰놀고 웃는 동안,
우리는 잠시 부모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다시 부부로 마주 앉을 수 있다.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의 공간에서 함께 운동을 하거나,
그저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간이 바뀌자, 관계의 결도 달라졌다.


아파트 시절에는 쉽게 찾아오지 않던 대화가

정말 폭발적으로 늘었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가까워지는 여유가 생겼다.


새롭게 준비된 우리의 공간은

마치 다시 만난 관계처럼 우리를 잇고 있다.



모두가 주인이 된 집


아이들은 이제 이 집의 손님이 아니다.

일부러 모두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부엌과 거실 동선을 뻥 뚫리게 만들어놓으니,
저녁이 되면 다 같이 밥을 하고, 반찬을 덜고, 수저를 놓는다.

모두가 식탁 차리기에 참여하는 저녁이 되었다.


주말이면 잡초를 뽑고, 낡은 벽을 긁어내고, 가구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가족은 스스로 이 집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건 내가 고쳤어.”
“내가 심은 토마토야.”


그 말속에는 단순한 자랑을 넘어
집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1층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누리고,
우리는 2층에서 부부로 다시 만나며,
각자의 자리를 충돌 없이 지키면서도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지는 것을 느낀다.


계절이 깃든 삶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점은,

우리 가족이 계절과 가까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봄이면 마당에 꽃이 돋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여름이면 잡초와 전쟁을 벌이며 마당에서 등목을 했다.
가을이면 낙엽을 함께 쓸었고,
겨울이면 집 앞 눈을 치우다 눈싸움이 벌어졌다.


계절은 귀찮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 삶에 리듬과 깊이를 주었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닌,
서로를 돕는 ‘함께 살아내는 가족’으로 묶여 가고 있다.


집은 결국 벽과 지붕의 합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만나고 기억을 쌓아가는

하나의 심리적 공간임을 이제는 정말 실감한다.


공간은 단순히 인간 삶의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이끌고 관계를 형성하며 의식까지 변화시키는 적극적 요소다.
— 프로샨스키(Proshansky) 외, 환경심리학 : Man and His Physical Setting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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