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단독 주택 살이 5년 후기

비규격의 자유 : '나만의 이야기'

by 파랑새의숲


삶의 본질은 밖에서 구경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하고 살아내는 가운데 직관으로 드러난다.

— 스피노자 『에티카』 II부 40정리 주석 2 해석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지 5년 차가 되었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도전했던 비규격의 삶.


당시, 내 도전을 응원하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단독주택이라니, 두고 봐라 앞으로 고생 꽤나 할 거다”라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때? 살아보니 손 많이 가고 불편하지?”라며 은근히 내 후회 섞인 소회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고,

“어머, 너무 좋겠다.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라며 막연한 부러움만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 그 다양한 반응들에 대한

나의 솔직한 후기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집에 대한 몇 가지 ‘공식’이 있는 것 같다.


집 = 아파트 또는 빌라
단독주택 = 구옥, 다세대, 전원주택


또 이런 공식도 있다.


아파트 = 자산가치 상승, 관리 편함
단독주택 = 자산가치 하락, 관리 힘듦


그래서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경험이 없거나, 낯설거나, 자신들이 가진 지식으로 걱정부터 내놓았다.


그래서 막상 나도 결정할 때 너무 오래 망설였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으며,

남편 또한 반대가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 살아보니 단독주택은 그야말로

단. 독. 주. 택이다.
지역, 환경, 집의 구조, 심지어 창 하나의 방향에 따라서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결국 ‘단독주택이란 이렇다’라는 보편적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우리의 고유한 지문처럼,

하나하나 다른 개개인의 삶처럼

그 어느 집도 어떤 범주에 묶기가 참 애매하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우리 집은 이렇다, 아파트가 단독주택과 다를 수 있는 부분이 ’철저히 비규격‘이다 정도일 것이다.


좋은 점들


우리 집은 계획된 택지지구의 단독주택 단지에 있다.
이 점이 의외로 굉장히 크다.

그 말은, 단독주택은 집 특성이 그 동네 특성 또한 크게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계획된 택지지구, 이 동네 단독주택들의 특징은 이렇다.

1년에 한 번 한다는 정화조 청소가 필요 없다.

도시가스, 음식물 수거, 분리수거 모두 체계적이라 집 앞에 내놓으면 이틀마다 수거된다.

평지라 언덕이 없고,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도 있다. 집 앞 주차도 가능하다.

초 중 고 길 한번 건너지 않고 공원길로 갈 수 있다.

도시 자체의 도로가 넓고 넓은 공원을 끼고 있어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 것이 일상이다.

서울로 나가는 교통이 편하다


집 자체로도 장점이 많다.

콘크리트 구조, 태양열 발전 가능.

테라스가 넓어 가족이 함께 바람 쐬기 좋다.

상하수도세 3만, 전기세 최대 2-3만 원 외 관리비가 없다.

그중에서도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장점,


1. 일단 마음이 편하다. 집 = 쉼, 힐링이 되었다.
윗집, 아랫집, 옆집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앞집이 막혀 있지 않아 하늘이 탁 트여 있어 자유롭다.

2. 전기료가 거의 안 든다.
태양열 덕분에 기본료 몇천 원만 내거나,
에어컨을 풀로 돌려도 아파트 시절보다 훨씬 저렴하다.

3. 날씨와 친해진다.
마당에서 바비큐도 하고, 해먹에 누워 하늘도 보고,
집이라는 공간이 계절과 함께 호흡하는 장소가 된다.

4. 따뜻하고 시원하다.
“단독주택은 춥다”는 말은 옛날이야기.
법적 기준만 지켜도 아파트 못지않게 따뜻하고 시원하다.
우리 집은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따뜻하다.


단점

물론 불편함 들도 있다.


1. 큰 비에 누수 위험성 + 셀프 관리 필요
우리 집은 12년 된 콘크리트 집인 데다 누수 전력이 있었다.
비가 많이 왔을 때 샷시틈으로 물이 똑똑 새어 긴장했지만,
보수를 하고 난 뒤에는 나름 해결되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갈라진 틈 같은 곳은 방수 페인트로 보수가 필요하고, 큰 비가 올 때면 샷시 틀 사전 점검 등 셀프점검이 필요하다.


2. 겨울 보일러 동파
보일러가 외부에 있는 노출 구조라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겨울엔 보일러가 얼곤 한다. (이건 우리 집만 이런 듯하다. 요즘은 대부분 안에 보일러실을 따로 만든다)
보일러 집을 새로 만들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돈이 많다면 싹 갈아엎어 편하게 다시 만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뭐 그럭저럭 나름 불편을 감수하며 살 만하다.


살아보니 결국, 다른 사람들의 많은 걱정 어린 주요 충고들은 내가 겪어본 현실과 달랐다.

벌레 많다 → 아니, 약 치면 깨끗하다.

관리 힘들다 → 아파트보다 많지 않다. 다만,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좀 있다.

불편하다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곳이 살기에 훨씬 편리하다.

보안이 취약하다 → 요즘엔 밖에서 절대 안 열리는 방범기능 방충망 샷시가 있다.

춥다 → 구옥이 아닌 새로 지은 집이면 오히려 더 따뜻하다. 결국 집마다 다르다.

집값 안 오른다 → 그건 아무도 모른다. 동네마다 다르다.

결국 내가 너무도 걱정했던 다른 사람들의 충고는

참고할 만했으나, 결정적으로 들어맞는 건 별로 없다.


공간의 철학 – '나만의 이유'라는 비규격에 산다는 것


내가 머무는 공간이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에 관한 문제다.


집을 옮긴다는 건 단순히 공간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아파트라는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나,
비규격의 상징인 단독주택이라는 집을 선택한다는 건
곧 내 삶의 방식과 존재 방식을 새로 쓰겠다는 선언이었다.


동일한 평면도, 동일한 창문과 베란다 속에서는
나 역시 규격화된 삶에 맞추어 살아왔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들어서자, 나 또한 다시금 ‘나만의 얼굴’을 찾고 싶어졌다.

그것이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단독주택으로의 이주는 단순히 편안함을 좇는 일이 아니다.
손이 더 가고, 조금 불편할 수 있음을 감수하더라도,
내 삶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느냐를

스스로에게 매 순간 묻는 일이었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단독주택의 장점과 단점은
정말로 집집마다, 동네마다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비규격의 삶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고 싶은가이다.


사람의 삶은, 자신이 머무는 집과 공간을 닮아간다.
내가 나를 닮은 공간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어진 공간은

나의 존재를 천천히 다시 빚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제 아파트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단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불편들조차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삶 구조와 형태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정원에 돌을 깔고, 잔디를 깎고,
가끔 길고양이가 물어다 놓은 참새 사체를 치우는 일까지.

그 모든 수고로움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단독주택은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자유와 충만을 선물한다.


결국 집이란, 남들이 정해놓은 공식이 아니라
내가 매일 살아내며 써 내려가는 이야기였다.


지극히 비규격의 자유,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나만의 이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뜻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떤 공간과 삶이 내게 편안하지를 찾는 과정.

끊임없는 나의 삶의 리모델링.

그것이 인생인가 하고 되뇌며

오늘도 마당 한편 해먹에 내 몸을 편히 뉘어

맑고 흐린, 구름 많고 쨍한

매일 변하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든 비규격의 삶들을 응원하며.


공간은 단순히 인간 삶의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관계를 빚어내는 적극적 요소다.
— Proshansky et al., Environmental Psychology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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