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결정, 비규격으로의 첫걸음

자유의 무게: 결정, 책임 그리고 문제해결

by 파랑새의숲


인간은 B와 D 사이의 C이다.


인간은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Choice(선택)를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의 총합이 곧 ‘나’ 일뿐, 애초에 고정된 본질 같은 건 없다.


- 사르트르,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단독주택 이주라는 실전 수업 속에서 깨달은 것은,

자유라는 달콤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끝없는 결정과 문제해결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평소 말로만 듣던 이 자유와 결정, 책임이라는 진실을

몸소 체험하는 듯한 시간이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이미 닦여진 길, 혹은 확실한 이정표를 따라가기에도 바쁜 삶이었다.

그 주류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선 경험은 많지 않았다.
화살표 없는 길에 발을 들이는 일이 드물었기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만의 것을 만든다는 것. 나의 틀을 새로 만든다는 것.

내 결정에 근거해 삶과 공간을 새로 설계한다는 것.


그건 단순한 집 짓기를 넘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책임,
그리고 끝없는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마치 실존 철학의 수업을 몸으로 배우는 듯한 시간이 찾아왔다.


현실과 이상의 균형


가장 어려웠던 건 현실과 이상의 균형 맞추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백지장 도화지 위에

처음부터 내 마음대로 설계해
원하는 집을 뚝딱 주문해서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분명한 제약이 있었다. 시간과 예산.


일단, 구체적인 집 공간 설계에 앞서,

나의 새로운 스타일의 삶을 가능하게 할 동네부터 선정해야 했다.


-남편이 서울까지 출퇴근이 가능해야 했고

-아이 셋의 초·중·고가 도보권에 있어야 했으며

-공원과 녹지가 충분하고 인구 밀도는 적당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편의시설은 너무 멀지 않아야 했다

-산속의 외딴 전원주택이 아니라, 도심 내 단독주택 계획지구이며

-언덕이 아닌, 평지에 위치한 주차장 시설이 잘 정비된 곳이어야 했다.

-주변에 큰 공원과, 체육시설, 그리고 도서관이 있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놀랐다.


“내가 이렇게 많은 걸 구체적으로 원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동시에, “내가 원할 땐 이렇게 무섭게 추진할 수 있구나.”


타성에 기댄 삶에서, 욕망을 깨운 삶으로


집을 짓다 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뭐가 힘들다는 지는 정확히 잘 몰랐다.


나는 그동안 편리와 단순함 속에서만 살아왔다.
해야 할 만큼만 하고, 나머지엔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단독주택 이사 프로젝트는 달랐다.
보통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선택해야 했고, 그 모든 책임 또한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이 분명해지자
나는 불도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후보 동네를 샅샅이 걸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래 머물며 분위기를 살폈다.


내가 가장 주의 깊게 본 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건,
내 어린 시절처럼 집 앞에서 “놀자~!” 하며

친구들이 쉽게 우리 집에 찾아올 수 있는 동네 문화.
스스로 길을 걸어 학교에 가는 일상의 자유.
핸드폰과 학원에 갇히지 않은,

진짜 ‘아이다운 생기 있는 삶’이었다.



보석 같은 동네, 그리고 새로운 문제들


아무리 찾아도 그런 곳이 수도권에 나오지 않아 절망하던 순간, 기적처럼 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나의 동네를 결국에는 찾아냈다.


그러나 산 넘어 산.

또 새로운 문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을 지을 마음에 드는 땅이 없었다

-좋은 땅은 이미 구옥이 들어서 있었고

-새 땅은 너무 비싸거나 입지·향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건축비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 입학 문제, 전학 문제 등등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다시 나를 시험했다.

결국 나는, 기본 뼈대가 가장 내 삶과 닮아 있는 집을 선택해,

전면 리모델링을 하기로 마음먹고

동네에 나와 있는 매물들을 모두 발로 찾아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내가 꿈꾸던 집의 그림과 가장 비슷한 틀을 가진 집을 발견했다.


하지만 또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내부를 거의 다 뜯어내야 할 정도의 대규모 공사가 필요했고,

그에 대한 예상 견적은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결국 나는 결심해야만 했다.
모든 공정을 반 셀프로—직접 사람들을 섭외하고, 결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직접 하기로.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비규격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스스로 강렬하게 체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그 끝판왕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자유의 감옥문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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