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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롥호롞 Mar 05. 2020

집 안과 밖에서의 차이가 작으면 자존감을 높이기 쉽다.

예수는 말하기를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은 첫 번째 계명과 같은데 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신이란 외부의 어떤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자신이라고 말하며, 사람이 자신을 알게 되면 자신 안에서 신을 보게 되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나와 하나임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유교 경전인 대학에서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하여 자신을 대하는 것과 가정, 나라, 세상을 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에 세상, 나라, 가정을 바르게 하길 원한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남녀관계와 관련해 말한다면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에, 남녀관계에 있어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맘에 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내가 나에게 사랑받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맘에 드는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 곧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맘에 드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기 쉬운 것이다. 내가 나에게 사랑받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말이다.


가령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하는 데 있어서 때때로 내 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때때로 다른 사람의 편이 되어서 자신을 바라보는데 곧 때로는 주관적이었다가, 때로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이처럼 내 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밀당에 있어서 당기는 것과 같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밀당에 있어서 밀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원리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내가 나에게 때로는 따뜻해지고 때로는 차가워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때로는 따뜻해지고 때로는 차가워지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나에게 밀당을 잘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밀당을 잘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잘해주기만 하는 것도, 늘 차갑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따뜻함과 차가움, 곧 적절하게 밀고 당길 수 있을 때 상대방에게 내가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안다. 이것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동일한데, 곧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때로는 주관적으로, 때로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대할 때 내가 나에게 매력을 느끼기 쉬워지고 자신을 사랑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때때로 내 편에 서서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자신을 믿어주다가, 때때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나는 이러이러한 것이 부족해’, ‘이러이러한 부분은 고칠 필요가 있어’라면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인식하고 고쳐나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신을 매력적으로 느끼기 쉽고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기 쉽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항상 내 편이 되어서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주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때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조절할 수 있으면 자존감을 높이기 쉽고, 자존감이 높으면 자신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잘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그들이 자신을 한 방향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주관적인 관점에서 '괜찮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다른 사람을 탓하기만 하거나 혹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한쪽 방향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내가 사랑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 때문에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밀당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에 적절하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단점이나 문제점을 인식해서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는 데 있어서도 밀당을 잘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면 괜찮아 보여서 당기게 되고,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문제점이나 단점들이 보여서 밀어내게 되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관점과 태도를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면 우리가 자신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 다른 사람 또한 내게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면, 우리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맘에 드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면 나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 또한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라는 말이다. 


가령 맘에 드는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스타일을 꾸며야 한다고 여긴다면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어느 정도 내가 나를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어느 정도 나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스타일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말을 조금 부연해서 설명해본다면 내가 집에서 편하게 쉬다가 약간만 신경을 쓰고 나가도 괜찮을 수 있게, 즉 바깥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집에 있을 때의 내가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면 그만큼 나는 나를 매력적으로 인식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꾸민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가장 매력적일 수 있는 스타일을 하는 것과 같기에 집 안에 있을 때의 나와 집 밖에서의 내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자연히 나는 평소에도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집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을 위해서 꾸며보면 어떤 스타일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떤 스타일이 이성에게 가장 매력적일 수 있는지를 찾을 수 있는데, 집에서 정장에 구두를 신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편한 옷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편하면서도 내가 나를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을 찾으면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스타일이 내게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를 발견할 수 있고 이렇게 발견한 스타일을 바탕으로 자신을 꾸민다면 훨씬 잘 어울리면서도 자신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스타일로 자신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 혼자 있을 때, 편하면서도 자신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스타일을 한다면 여기서 몇 가지를 바꿔줌으로써 효과적으로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스타일은 편안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혼자 있을 때의 나와 사람들 앞에 있을 때의 나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면 혼자 있을 때도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나는 나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곧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남에게 사랑받는 것도 쉬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참조

<대학, 중용 – 북경대 교수 황종원 옮김, 서책, p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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