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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기맘 Oct 01. 2024

8장. 3박 4일간의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게되다.



여의도 한강공원을 뒤로한 채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근처에 숙소를 수소문해서 찾았다. 시설에 들어갈 생각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필요했다. 선생님들이 번갈아 가며 카톡 하며 전화하며 연락들을 취해 오셨지만 오히려 더 짜증만 나고 내 화만 더 솟구칠 뿐이었다.


"편안하고 따뜻한 방에 들어와서 푹 쉬어요." 대체 뭐가 편안하고 따뜻하단 건지? "연락 안 되면 경찰에 연락 취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연락 주세요." 경찰이라 하면 지긋지긋한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그런 연락들이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다. "잘 있으니까 오늘만큼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라는 한 통의 메시지를 보낸 후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나는 핸드폰을 멀리한 채 잠을 청했다.


자다 깨다를 얼마나 했는지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잠을 자려고 했지만 쉽게 잠이 들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들은 어김없이 흘러갔었고 어느덧 퇴실 시간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이제 어딜 가지?"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숙소를 잡는 건 매우 사치였다. 근방에 있을만한 곳이 있을까? 찾던 와중에 찜질방이 있는 걸 알고 지하철을 타고 찜질방으로 이동을 했다.


아직 그렇게 배가 많이 나온 상태가 아니었던 터라 그럭저럭 찜질방은 내가 있을만했다. 찜질방에 사람들은 또 어찌나 그리 많던지 서울 사는 사람들은 죄다 찜질방에서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찜질방에서 있으면서 시설에서 지내는 엄마들 중 몇몇이 내 카톡 대화명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에는 그 연락을 아예 안 볼라 했었다. 그렇지만 엄마들한테 까지 감정이 있던 게 아니었으므로 연락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고 내 이야길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답답했던 마음을 전부다 자세히 시시콜콜하게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일부만 털어놔도 단단히 꼬이고 뭉친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내가 지금 이렇게 믿고 속 마음을 말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마냥 좋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 있다는 이야기는 정작 하지 않은 채 찜질방에서의 하루도 그렇게 지나갔다.


오후쯤 찜질방에서 나와 무작정 택시를 붙잡아 타고 나는 인천으로 향했다. 임산부 교통비 지원금을 처음으로 쓰게 된 시초가 되었다. 살던 곳 근처에는 웬만하면 그날의 일들이 다시금 떠올라서 다시는 안 오고 싶었는데 살던 곳에 자주 가던 밥집 사장님이 너무 생각이 나서 저녁 먹을 겸 겸사 들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내 상황도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분이라 생각이 더 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바쁜 시간 이 아니었고 나를 반겨주시는 사장 엄마의 미소에 눈물이 순간 핑 돌았다. 밥은 먹었냐면서 일단 밥부터 먹자며 김치찌개를 끓여서 주셨다. 김치찌개에 공깃밥 한 공기를 그 자리에서  뚝딱했다. 배가 허기가 졌던 건지 아니면 마음이 편안했던 건지 밥이 술술 들어갔다 최근에 먹는 식사량으로 봐서는 밥공기 한 그릇은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양인데....


그렇게 푸근했던 저녁식사를 마치고 사장 엄마랑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기 아빠는 어떻게 된 건지 아기는 잘 크고 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나는 미혼모시설에 오고 난 뒤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꺼냈다. 아기 아빠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사장 엄마는 말했다.


"너 아기 아빠 없이 애를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니? 아기도 상태가 안 좋다면서?"

"더 늦기 전에 생각 잘해야 한다 너 나는 네가 너 살길을 먼저 찾았으면 좋겠다 알갔니?"

"더 늦기 전에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겠다. 아기는 아닌 거 같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듣기 나름이긴 할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큰 동요를 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크게 뒤 서운하게 와닿지도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의 입장이라면 딸자식을 두고 있는 엄마의 입장이라면 나도 딸의 인생을 위해서 결사반대 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오늘 시설 안 들어갈 거면 우리 집에 가서 자자." 사장 엄마의 배려로 인해 셋째 날 잠은 사장 엄마의 집에서 지친 몸을 눕혔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편히 쉬라는 이야기를 듣고 방에 누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대학병원 진료 한 군데를 앞두고 있다가 결국 나의 부재로 인해 취소가 된 상황이었기에 앞으로 병원 진료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마냥 언제까지 이렇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혼모 시설에서 지냄에 답답함 그리고 환경적인 요소들 이번에 상담 선생님과의 상담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까지.. 그냥 피한다고 마냥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간호사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다른 선생님들 연락은 일체 받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간호사 선생님 연락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엄청 편안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간호사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아픔을 안고 계셨기에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던 분이었기에 그리고 함께 병원진료도 동행해 주시는 선생님의 고마움과 연락을 사실상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장 엄마 집에서 그렇게 3박 4일의 마지막 밤을 감사히 보내고 다음날 못 이기는 척 간호사 선생님을 만나러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고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고는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해해 주시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드는 계기로 작용이 됐다. 당시 상황과 상담 선생님의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해가 바로 풀린 건 아니지만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 앞에서 마냥 피하고 회피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나의 3박 4일의 무단가출 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뱃속에 뚜기를 위해서 치료받기 위해서 나는 다시 시설로 들어갔다. 간호사 선생님의 적절한 도움이 컸다.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책은 병원 진료였기에 내 감정선은 잠시 옆으로 밀어둔 채..."그래 나랑 뱃속에 뚜기만 생각하자 아직 그 어떤 일도 일어난 건 아니니까.."마음을 몇 번이고 다잡았다. 그렇게 철부지 35살 미혼모의 3박 4일 방황은 큰 사고 없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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