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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평 Jun 09. 2022

우리 회사에 식물팀이 생겼다

13. 반도의 흔한 IT 회사에서 식물 키우기

만개했던 벚꽃이 하나 둘 지고, 완연한 봄 날씨가 찾아오기 시작했을 즈음. 벌써 2년 넘게 이어져온 강력한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재택근무를 유지하던 우리 회사는 다시 출근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변경되었고, 나도 오랜만에 강남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나의 가장 큰 변화는 꽤 본격적인 식물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사무실에 막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동료들의 얼굴보다, 뽀얀 먼지가 잔뜩 앉은 회색 빛깔 식물들에 자꾸만 눈이 가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동료 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우리 회사 대표님이 한창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에는 사무실에 한 달에 한두 번씩 대형 나무 화분들이 배달되어오곤 했다.

헉 저 (화)분은 또 뉘신지…?


업무를 보고 있으면 식물들은 이동 받침대에 실려 들어와 마치 처음 입사한 사원처럼 나와 동료들의 이목을 끌곤 했다. 이 초록색 얼굴의 과묵한 신입은 비록 말은 없지만, 각자 한 덩치씩 하는 아이들이라 그 존재감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장실이나 회의실을 지나칠 때면 우리는 늘 어색한 눈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달이 되면 더 큰 신입이 들어왔고, 그렇게 수십 개의 화분들이 우리 사무실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때의 초록 빛깔 신입들도 어느새 우리 회사의 6년 차가 되어 웬만한 직원들보다 높은 연차를 자랑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존재가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는지 나를 포함한 팀원들의 눈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대표님. 그 식물들, 제가 한 번 관리해볼게요.


5년이 지난 지금, 나도 식물을 기르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고 짧은 지식으로나마 식물들을 관리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대표님에게 회사의 식물 관리자로도 활동해보고 싶다고 용기 내어 제안했다. 그리고 대표님은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셨다.

단 대표님의 몇 가지 요구사항이 있어 식물들의 관리 범위를 구두로 간단히 협의했고, 회사의 지원으로 가드닝에 필요한 흙과 비료 등을 나름대로 갖춰놓았다. 그리고 뜻을 함께할 팀원들을 모으고 식물을 잘 관리하기 위한 루틴도 만들었다.



흔한 사내 식물팀의 정기 업무 일람


먼지가 뽀얗게 앉은 그들의 이파리를 물수건으로 슥슥 닦아주면, 회색 얼굴은 금세 초록빛으로 반짝인다. 화분 속 흙이 많이 빠져 뿌리가 바깥으로 잔뜩 드러나버린 친구들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질 좋은 흙을 배합해 흙 보충을 해준다. 이 외에도 팀원들과 고정적인 공중 분무 스케줄을 정해 이파리에도 물을 잘 먹여주기로 약속했다.


거리두기의 해제로 사람들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 봄을 맞은 것처럼, 나도 회사에 있는 6년 차 대리님 아니 식물들에게도 그들만의 따뜻한 봄을 찾아줘야겠다.


대리님, 이제 저희 식물팀이 잘 키워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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