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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Sep 05. 2022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27. 나의 아이비 잔혹사


내 아이비가 최고야!


우리 집 침실의 한쪽 벽에는 예쁜 이파리를 늘어뜨리며 매달려있는 귀여운 식물이 있다. 초록 바탕 위에 하얀 무늬가 예쁘게 어우러진 무늬 아이비다.

나의 아이비는 우리가 흔히 아는 행잉 식물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검지 손가락 길이만큼 짤막하고도 앙증맞은 크기를 자랑했다. 덩굴 식물이라고 하긴 민망할 정도로 몸체가 짧아 슬픈 아이비였지만, 작아도 괜찮았다.

앞으로는 더 클 일만 남았으니까!


아이비는 나의 바람대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자고 일어나면 새끼손톱만큼 작은 이파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새로운 잎이 나올 때마다 처음 보는 무늬를 내어주곤 했다

녹차라떼에 우유 거품을 머금고 있는 듯한 몽글몽글한 색감이라니, 이건 너무 예쁘잖아!


(실물이 더 예쁩니다….)


아이비는 우리 집에서 봄과 여름을 지내고, 어느덧 어엿한 청년이라도 된 듯 꽤 다부진 줄기와 이파리를 가지게 되었다. 길이도 손바닥 정도의 크기만큼 길어졌다.

길을 지나가다 아파트 옹벽 위에 자라난 대형 담쟁이덩굴을 발견해도 부럽지 않았다. 내 자식이 제일 예쁜 것처럼, 내 눈엔 우리 집 아이비가 이 세상 어느 아이비보다 가장 예뻐 보였다.


내 아이비 최고…⭐




아이비와 함께한 따뜻한 봄을 지나 푹푹 찌는 폭염을 거쳐 장마가 시작됐다. 날이 흐려서, 충분한 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몽글몽글한 예쁜 잎을 자랑하던 아이비의 이파리는 점점 싱그러운 초록빛을 잃어버렸다. 햇빛을 대체할 수 있는 식물등을 쐬어주었지만, 상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만 갔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가끔 이파리가 시들곤 해 종종 잘라주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제 막 펼치기 시작한 이파리들 마저 겸손한 모양으로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화분과 아이비를 분리시켜 뿌리를 확인해보기로 했고, 흙을 파헤쳐서 살펴본 아이비의 뿌리와 줄기는 이미 제 기능을 오래전부터 상실한 듯 까맣게 물러있었다.


어떻게 저 상태로 (지금까지) 공중에서 버틴걸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파리와 줄기 그리고 뿌리로 구성되어있는 식물은 어느 하나라도 아프면, 나머지 요소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긴 장마철로 인해 아이비의 뿌리는 충분한 빛과 공기를 받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줄기를 타고 이파리를 향해 그 영향이 가지 않았을까..?


겉보기엔 그래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며칠을 방치해둔 것이 뒤늦게서야 후회가 됐다. 뿌리가 잔뜩 무르는 경우, 제대로 수분을 흡수하지 못해 이파리는 바짝 말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신호를 보내고 있던 아이비였지만, 나는 보이는 것만 믿었으므로 아이비를 빨리 구제해주지 못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결국 아이비는 잠시 공중에서 내려와 작은방에 마련한 미니 온실에서 요양하는 중이다. 무른 부분을 잘라냈기에 다시 뿌리내리길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의 아이비가 건강을 다시 회복해, 다시 공중 위에서 하늘하늘한 이파리를 자랑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온실 속의 화초가 된 아이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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