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철학> 10주차. 2025. 5. 8.
신은 남성과 여성의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다. ... 양성적 신은 입문 의식의 궁극적 요체다.
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깃들여 있음을 알 뿐 아니라 만물이 영원한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소원-성취의(wish-fulfilling) 나무숲에 거하며 불사의 영주를 마시고 무음의 영원한 화음을 듣는다. 이들을 불멸의 존재(Immortality)라 한다.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부 2장 5절 <신격화>
영웅이 얻으려는 것은 불로불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권능이다. 이 기적 같은 에너지적 본질만이 불멸의 것이며 ... 성자와 현자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광명이다. ...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인간이 내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때 그렇다.
―1부 2장 6절 <궁극의 선물>
영웅의 임무가 완수되었다 하더라도 영웅은 삶을 변형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1부 3장 1절 <귀환의 거부>
이제 ‘출발-입문-귀환’으로 이루어지는 영웅의 여정 중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귀환’ 단계에서 모든 과정이 반복, 심화된다. 즉, 귀환 안에 ‘출발-입문-귀환’이 있다. 입문 단계의 끝에서 영웅은 모성 및 부성 콤플렉스를 넘어 스스로 부모가 됨으로써(“나와 아버지는 하나”) 신과 합일된 인간(神人)으로 거듭나는데(apotheosis), 이러한 입문의 끝이 곧 귀환의 시작이다. 정상에 올라가 영약(靈藥)을 얻은 뒤 하산하는 과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방향이 전환된 새로운 ‘출발’이 된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아버지(남성)이자 어머니(여성)인 신성을 체화한 영웅은 양성(兩性) 통합자가 되어 스스로를 낳게 된다. 즉, 새로 태어나게 된다. 이 거듭난 자가 신인(神人), 즉 영원한 생명(Immortality)이다. 그런데 그 생명의 배후엔 무엇이 있는가? 거대한 죽음이 있다. 무(無)가 있다.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부모의 부재(不在)’라는 근원적 콤플렉스가 있다. 붓다(석가모니) 탄생과 함께 육적 어머니의 죽음이 나타나고, 그리스도(예수) 강탄(降誕)과 함께 육적 아버지의 부재가 드러난다. 부재(不在), 존재하지 않음. 부모는 존재의 근원인데 그 근원이 없다. 뿌리가 무(無)다. 공(空)이다.
이러한 실존적 공허, 허무, 비존재성이 석가모니를 붓다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들었다. 스스로 부모(신) 되게 한 것이다. 부모 없음은 자아(ego) 없음과 상통한다. (육적 부모로부터 비롯되는) 타자의식의 가아(假我/ego)가 무화된 무자아/무의미/무소속으로부터 홀로 태어난 자, 이것이 독생자(獨生子)이며 독존(獨存)하는 유아(唯我)다. 독생자는 기독교에서 ‘신의 외아들’이란 의미로 예수를 일컫는 말이며, 독존의 유아는 석가모니의 탄생게인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에서 빌린 것인데, 종교적 의미를 걷어내고 보면 독생자는 곧 유아(唯我)가 된다.
아무것도 없는(無) 데서 스스로 태어난(獨生) 존재. 무(無)가 낳은 유(有)다. 그 존재(有)는 유일하고 독자적이며 고유하다. 타자로부터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아(唯我), 유일무이한 나다. 天上天下唯我獨尊의 ‘唯’를 부사로 보지 않고 ‘我’를 수식하는 관형사로 읽은 것이다. 천상천하에 유아가 독존한다. 그 홀로 높은 유아가 독생자다.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생동하는 영원한 생명(Immortality)이다. 독생자의 원어 ‘모노게네스(Monogenēs)’에서도 같은 의미가 드러난다. 모노게네스는 ‘유일한(only)’이란 뜻의 ‘monos’와 ‘되다/태어나다’라는 뜻의 ‘genes’로 이루어져 있다. only begotten.
그렇다면 ‘독생자 그리스도’와 ‘독존자(유아) 붓다’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며칠 전 글에서 붓다는 그리스도의 여성 버전, 그리스도는 붓다의 남성 버전이라고 썼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다. 붓다/그리스도는 여성이자 남성이며 무이자 유로서 서로를 관통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이듯 붓다와 그리스도도 하나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와 붓다가 하나의 영혼을 가진 두 인물이라는 상상을 했고, 이를 <환생>이란 소설로 형상화한 바 있다.
붓다는 그리스도로 환생하고 그리스도는 붓다로 환생한다. 무는 유로, 유는 무로 변용되는 그 부단한 환생이 바로 귀환이다. 다시 태어나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돌아오며 거듭나는 것. 이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의 실재를 깨달은 자가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같다. 그는 어둠의 세상으로 하강하며 천상의 빛을 잊지 않기 위해 손가락에 반지를 낀다(『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부 3장 4절). 빛이 담긴 반지다. 독생자이며 독존자인 그는 반지 낀 손으로 밭을 일군다. 그렇게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