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4): 부성 콤플렉스와 성자 악마

<삶과 철학> 9주차. 2025. 5. 1.

by 김태라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넓은 세계로 나갈 때 거쳐 가는 입문식의 사제(initiating priest)이다. ... 입문식은 부모에 대한 감정적 유대를 철저하게 바로잡으면서 그의 소명에 대한 기술과 의무와 특권을 안내한다. 비법 전수자는 유아기의 부적당한 카덱시스에서 벗어난 입문자에게만 의식(儀式)의 상징을 전수한다. 자기 강화나 개인적 기호 때문에 비개인적 힘을 오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입문의 영광을 입은 자는 인간성을 전적으로 벗겨내고 비개인적 우주의 힘을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거듭난 자이다. 그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었다(He is the twice born; he has become himself the father).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부 2장 4절 <아버지와의 통합>



5월 첫날이자 비 내리는 근로자의 날. (나의 뜻과 무관하게) 정상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교 종합정보시스템에 근로자의 날과 대통령선거일이 뒤늦게 보강일로 올라오는 바람에 그리 되었는데, <삶과 철학> 강의실을 제외한 경기대 서울캠퍼스 전체가 ‘비워진’ 느낌(상태) 속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우주에 우리만이 존재한다. 이 느낌.


여신을 만난 뒤, 낡은 자아를 벗는 시험(유혹)을 통과한 영웅은 생명-어머니의 바다를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충만한 우주에 균열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의 목소리다. 육적 어머니가 자식을 ‘삼켜’ 자궁에 갇힌 존재성을 만든다면, 그 어머니의 짝인 “악마적 아버지(ogre father)”는 자식을 통째로 ‘잡아먹는다.’ 부부인 둘은 한 덩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반영하며 본질상 동일하다.”(the father and mother reflect each other, and are in essence the same)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는 ‘괴물 아버지의 원형적 악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식사 도중 둘째 아이를 집어, 아무렇지 않게 수프 접시에 담아 먹었다.”


A. 샤르보니에의 『마음 감옥: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은 위와 같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악보다 무서운 것”이라는 원제가 가리키는 그 무서운 것은 ‘두려움’이다. 나를 정신적으로 ‘잡아먹는’ 부모로부터 주입된 ‘비이성적 두려움’은 생명력을 갉아먹고 자기실현을 방해한다. 이의 근원은 부모 내면의 사랑 결핍과 부정적 에너지에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부정성(카르마)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면서 카르마의 연쇄를 만든다. 이 프로그래밍된 기생체적 요소는 아이의 의식 안에서 그 자신의 것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내 것이 아닌 부정적 에너지로부터 행복에 반하는 행동을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 부모의 에너지가 우리 안에 기생하는 한 자유를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지난주에 치러진 <삶과 철학> 중간고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영웅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소명의 거부 및 모성 콤플렉스 문제의 해결 방법을 ego/Self 개념을 적용하여 서술하시오.’ 그 탈피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8화에 등장하는 유혹(욕망)의 통과의례이다. 캠벨의 표현처럼 에고적 욕망이 “근친상간의 악몽”과 같음을 깨닫고 구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자궁’으로 요약되는 육적 모성을 극복했다면, 육적 부성의 악마성은 그것을 “입문식의 사제”로 승화시킴으로써 넘어설 수 있다. 부성 콤플렉스는 능력을 가진 왕이나 신, 법(法)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그리고 정신적 힘을 가진 왕, 신, 법의 현현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그런데 성인의 탄생에는 늘 악마가 동참한다. 악마가 있기에 성인이 있으며 나아가 그 악마가 곧 성인이 되는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통찰을 「성자 악마」라는 이야기로 형상화한 바 있다.


‘악마=성자’의 관점에서 보면, 나를 삼키고 죽이는 부모가 ‘콤플렉스’라는 기제를 통해 생명의 어머니와 하늘 아버지에게로 나를 인도한 것이다. 둘이 하나인 천상의 부모는 신이자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는 법, 우주의 원리, 신의 말씀(언어)이다. 그 법인 말씀이 우주를 창조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은 신과 함께 있었고, 말씀이 곧 신이었다.”(요한 1:1) 또한 로고스는 신의 화육인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의 콤플렉스』(송상호 저)는 위의 맥락에서 예수의 신이 ‘만들어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늘 아버지’는 육적 아버지(요셉)에 대한 콤플렉스를 탈피하기 위해 예수가 창조한 투사물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만난, 어쩌면 만들어낸 신은 예수의 두려움의 산물”이라는 구절은 앞에 나온 『마음 감옥』 내용과도 연관되는데, 뒤이어 “인간이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거나 그 삶에 아무런 의미와 방향을 갖지 못하면 그는 자신을 티끌처럼 느껴서 마침내 무의미성에 압도되고 말 것”이라는 E. 프롬의 문장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온통 자신을 콤플렉스로 점철시키는 현실에서 도피해 무언가와 동일시해야 했던” 예수의 심리를 지적하며 “콤플렉스의 결과로 생긴 자아 이상은 예수를 신으로 데려갔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신이 ‘만들어진’ 것이든 에고의 ‘투사물’이든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근본적으로, 우주 전체가 꿈이기에 인생 자체가 투사의 산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투사’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을 창조한 자라면 그는 ‘신의 신’이다. 예수가 천상의 아버지를 불러내 “나와 아버지는 하나”임을 선포하여 자기 안의 신성, 즉 ‘그리스도 의식’을 개화시켰다는 점, 그래서 육적 부모로부터 전수되는 카르마의 본질인 죽음을 넘어섰다는 점,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붓다 의식’을 개화시킨 고타마 싯다르타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콤플렉스를 활용해 천상천하유아독존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수천 년간 ‘영웅 중의 영웅(왕중왕)’으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성인들에겐 거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고, 이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신성(그리스도 의식) 혹은 불성(붓다 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고로 콤플렉스의 크기는 그 존재의 크기이다. 그 거대한 것을 그 존재가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콤플렉스는 에크하르트 톨레 식으로 말하면 ‘고통체’가 되는데, 그에 따르면 개인이 가진 고통체가 클수록 그 깨어남의 규모도 크다. 따라서 인간이 지닌 콤플렉스(고통체)가 얼마나 독한가, 그리고 그 지독한 몬스터를 얼마나 잘 부려쓰는가,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 몬스터 제어력이 범인(凡人)을 ‘하늘 아버지’와 동일한 절정의 존재, 즉 신으로 격상시킨다. Apotheosis(신격화), ‘영웅의 여정’ 다음 단계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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