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철학> 11주차. 2025. 5. 15.
세상을 버린 자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오려 하겠는가? ‘거기’에 있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디에 있든지, 그가 살아 있는 한, 생명은 그를 부른다.
―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부 3장 3절 <외부로부터의 구조>
안 하기(無爲)를 하라. 그러면 만사가 다스려진다.
―노자, 『도덕경』
아침에 비가 온다. 비는 하늘과 땅을 잇는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지난주 수업일은 어버이날이었고 영웅은 자신의 부모가 되었다. 스승의 날인 오늘을 기점으로 영웅은 스승(Master)이 된다. 왜 이렇게 만사가 계속 짜맞춘 듯 맞아떨어질까? 이 수업이 진행되는 곳은 서울 경기대 614호이며 내 생일은 6월 14일이다. 이 모든 것을 무엇이 만들었고 만들고 있는가? 도(道)다.
도(道)란 무엇인가? 길이다. 길이란 무엇인가? 영웅의 여정이 펼쳐지는 장(場)이다. 장이란 무엇인가? 물리학 용어로 양자장, 쉽게 말하면 공간, 우주, 신의 품속이다. 공간(空間)이란 ‘빈 사이’란 뜻이다. 공(空)인 도는 비어 있다. 비어 있다는 건 완전히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에너지, 의미이다. 우주에 가득 찬 그 에너지인 의미가 신의 마음이다. 고로 도는 충만한 의미이다.
충만한 의미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스스로를 드러낸다. 세상에 펼쳐진다. 그래서 동시성 현상이 나타나고 6월 14일생의 강의가 614호에서 진행되고 어버이날에 어버이가 되며 스승의 날에 스승이 된다. 이 ‘됨’이 귀환이다. 실현됨.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은 업사이드 다운(Upside Down)이며 그 안팎과 위아래 일치됨, 이것이 도의 현현이다. 신성의 육화, 의미의 형태화, 사랑의 실현.
Realization. 자각(自覺)이자 실현. 여기서 ‘각(覺)’이란 무엇인가? ‘보는’ 것이다. 覺이란 한자에는 ‘보다(見)’가 있다. 깨달은 자(覺者)는 무엇을 보는가? Reality를 본다. ‘Reality를 보는’ 것이 Realization이다. 실재(Reality)를 보면 양자장의 에너지가 입자화되어 물리적 형태로 나타난다(Realization). 고로 깨달음은 물질계에 구현되어야 진짜다. 구현되지 않은 것은 머릿속 지식일 뿐이다. 이 구현이 귀환이다. 하산이다.
물질화는 에너지의 하강 현상이다. 등산자의 하산은 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불교 <십우도>에서도 나타난다. 9단계 ‘반본환원(返本還源)’에서 10단계 ‘입전수수(入廛垂手)’로의 전이이다. ‘저잣거리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로 직역되는 이 최종 단계의 목적은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타인이나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입전수수 전 단계인 반본환원은 본래 자성이 드러나 내외가 충만한 상태이다. 마음(內)과 세상(外) 모두 신이고 진선미다. 따라서 반본환원에서 입전수수로의 전환, 즉 귀환은 중생을 깨우치거나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심리에 근거할 수가 없다.
동굴 밖의 빛을 본 자는 동굴 속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어둠에 갇힌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동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귀환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영웅에게도 자의식이 있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야망, 타인을 끌어들이려는 욕망, 제 맘대로 하고 싶은 어린애 같은 심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하지 않는다. 이 <하지 않음>이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이다. 할 수 있어도, 하고 싶어도, 해야 한다 해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욕망도 의무도 아니다. 양자 모두 도가 아니다. 도 아닌 것은 하지 않는다. <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도인이고 군자이고 성인이다. 하는 능력 위에는 안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예수는 안 했다.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었고, 절벽에서 날아오를 수도 있었으며, 온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인은 도(道)로 움직인다. 그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그를 간다. 길(道)이 차오르면 그는 움직인다. 길이 난다. 도가 간다. 이것이 무위(無爲)의 위(爲)다. 안 함으로 행하는 것이 도다. “도는 행하지 아니하되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없다.”(노자) 도의 길은 샘물처럼 흐른다. 반본환원은 입전수수로 넘쳐난다. 충만한 에너지는 그대로 멈춰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고로 귀환은 여정의 당연한 과정이며 결과이다. 하강/육화/실현되지 않은 것은 도(깨달음)가 아니다. 도는 흐르고 길은 펼쳐진다. 태양과 하나 된 각자(覺者), 하늘 끝까지 올라간 영웅은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 올라갈 데가 없어도 그는 계속 올라간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올라갈 곳이 없어도 올라가는 에너지의 흐름이 세상의 눈에는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정상을 기점으로 보면 내려감이 곧 올라감이다.
그의 등하산으로 “뜻(의미)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제 길(道)은 아래로 흐른다. 천상의 에너지는 형태가 되고 육체가 된다. 작품이 나오고 현실이 변하고 몸이 거듭난다. 이것이 영웅이 가져온 ‘불멸의 영약’이다. 그는 존재 자체로 세상에 그 영약을 전한다. 만유가 그의 안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존재 안에 그가 있다. 도가 임한다. ‘I am God’의 현존이다.
이제 그는 맘대로다. 공자는 이를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 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법이다. 그는 법 안에 있고 법은 그 안에 있다. 이제 그는 제 발로 도에 들어간다. 길을 간다. 나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며 나는 뜻대로 움직인다. 이것이 스승, 통달자, Master이다. 그는 자신의 부모이자 자식이며 제자이자 스승이다. 그는 자신을 낳고 기르며 스스로 배우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온 우주를 먹여 살린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비가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