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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Mar 18. 2020

적은 돈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꽃으로 행복을 사세요

나의 집은 ‘홈 오피스Home Office’이다.


혼자 살기에는 넓은 공간이지만 안방 하나만 나의 사적인 공간으로 사용하고 거실과 다른 공간은 아이들과 수업하거나 학부모님과 상담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가끔은 내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원룸에서 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퇴근, 안방 문을 열고 나오면 출근이다.


출퇴근을 한 공간에서 하다 보니 외부 일정이 없으면 집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일부러 약속을 만들거나 운동을 하러 나가야 겨우 몇 걸음을 떼고 사람들을 만난다.

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조금은 둔감하다.


집이 일하는 공간이라는 생각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라이프 사이클 때문에 친구나 지인들을 자주 초대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최근 용기를 내 손님을 초대했다.

모임을 운영하는 일로 지난 2월부터 만나자 노래를 부르던 분들과 미팅을 해야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카페에서 만나기가 꺼려져 집으로 오시면 어떠냐 했더니 다행히 좋아하셨다.




지인을 초대한 그날은 시간도 여유 있고 햇살도 봄볕처럼 따사로웠다.

집에만 꽁꽁 갇혀 있다가 한층 온기가 가득한 공기를 들이쉬고 나니 봄이 왔구나 싶어 마음이 동동거렸다.


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일 년 중 가장 좋아한다.

이맘때가 되면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마음에 몽글몽글 구름이 피었다 사라진다.


설레는 이 순간, 봄을 느끼고 싶었고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기분 전환에는 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마침 손님도 오시니 집도 화사해 보이면 분위기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서둘러 차를 몰고 가까운 꽃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푸른 조명 아래 하늘거리는 꽃들이 마음을 싱그럽게 두드린다.


'얘들아 안녕, 너희를 데려가려고 왔어.'


마스크를 쓴 젊은 사장님이 햇살처럼 밝은 얼굴로 맞아주셨다. 기분이 가벼워진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콕 박혀서 '헤이 구글~'만 외쳐댔더니 사람이 고팠는지 낯가림도 접어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플라워 클래스에서 배웠던 꽃들이 반가워 복습하는 마음으로 자그맣게 꽃 이름을 불러본다.

하루라도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덜 핀 꽃송이를 부탁드렸다.

여리여리한 라넌큘러스에 청초한 델피늄, 사장님의 인심으로 해사한 설유화까지 소담한 한 다발이 금세 만들어진다.


봄이 한가득 내 품에 안긴다.


'봄아 안녕. 네가 왔구나. 어서 집으로 가자.'


집에 오자마자 매끈한 유리 화병에 신선한 물을 받는다.

꽃꽂이용 가위를 잡고 과감하게 키를 줄여 생명수에 퐁당 퐁당 담가준다.


봄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하루 종일 일하는 책상 위에 두었더니 고개만 살짝 들어도 꽃과 눈이 마주쳐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초 하나를 켜서 방을 가득 채웠다는 이야기처럼 꽃 한 다발 덕분에 집이 봄으로 가득 찬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에 마음이 온통 핑크빛이다.

엄마가 보셨다면 꽃을 또 샀냐며 잔소리하셨겠지 싶어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다.


꽃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할 일도 놓고 바라보다가 손님이 도착했다는 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어서 오세요~

하며 들뜬 목소리로 문을 여니 반가운 얼굴이 들어와 한껏 행복해진다.

책상 위에 다소곳하게 놓인 꽃을 보고는 너무 예쁘다며 서로 호들갑이다.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함으로 한껏 차오른다.


카페 재즈 음악도 틀어 놓고 꽃이 놓인 테이블에 디저트와 차가 더해지니 여느 카페 못지않다.

함께 한 지인들도 카페보다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며 엄지 척 대만족이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마실 수 있는 돈으로 행복을 가득 담았다.


그날 품에 안겨온 봄은 일주일이 넘은 지금도 매일매일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화병에 담긴 봄이 다 스러지면 나는 다시 행복을 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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