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기
내가 사는 집은 부모님이 사시는 집과 차로 30분 거리다.
도시의 경계는 달라지지만 큰 도시의 시내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거리에 비하면 옆동네나 마찬가지다. 길이 시원하게 뚫려있는 덕분에 출퇴근 시간만 아니면 집에 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이사하고 얼마 안 되어서는 집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부모님이 허전해하실까 봐, 시간이 많아서, 약속이 있어서와 같은 여러 이유들로 매주 금요일이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짐을 바리바리 쌌다가 풀었다가. 불편함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혹시라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물건 대부분을 챙겨 다녔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보따리 상이라고 착각했을지 모른다.
금요일에 일 끝나자마자 부모님 집으로 퇴근해서 월요일에 아침 먹고 오곤 했으니 거의 두 집 살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차츰차츰 혼자 사는 시간에 적응이 되고 주말에도 외부 일정으로 바빠지는 일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느 때는 혼자인 주말을 만끽해보고 싶어서, 어느 때는 짐 싸는 게 귀찮아서 의도적으로 안 가기도 했다.
주말에 집에 가기 전 그동안 밀린 집 청소를 싹 해놓고 가야 마음이 편한 이상한 습관 탓에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 늦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집을 일부러 멀리했다.
집에 갈 때는 항상 읽을 책과 노트북을 챙겨갔는데, 일단 집에 들어서면 무장해제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쉬고, 또 쉬게 되었다. 할 일을 가져가도 집에서는 자꾸만 미루고 뒹굴거리기만 했다. 그래서 정말 꼭 할 일이 있을 때는 일을 핑계로 집에 가지 않았다. 집에 가면 하염없이 늘어져 있을 내 자신을 추스를 수가 없어서.
그런데, 그렇게 집에 가지 않는 주말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 주는 일이 꼭 두 배는 힘든 느낌이 들었다.
마음도 어쩐지 추욱 처지는 것 같고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지만 헛헛하고 외로웠다.
처음에는 몰랐다.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 흐르고 몸도 마음도 무거운지.
집에 다녀온 후의 일주일과 그렇지 않은 일주일을 무심코 들여다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 모든 무거움이 집에 가서 온기와 사랑을 충전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부작용이라는 것을.
가족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한 끼 같이 먹는 일은 나에게 영혼의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것과 같은 매우 중대한 의식이었고 심리적 안정 기제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저 귀찮아서, 아니면 혼자 있는 주말을 즐기고 싶다는 이유로 잠시 멀리했던 가족과의 일상은 사실 나를 다시 뜨겁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가족의 의미가 나에게 얼마나 큰 지, 아마 이 경험이 없었다면 몰랐겠지.
가족이 소중하다 생각했어도 나에게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겠지.
이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매주 주말이면 충실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 아빠 얼굴 한 번 더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며 수다도 떨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함께 공감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철부지 딸내미가 엄마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길 소원한다.
운명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른거리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