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품격을 올려준 것들 1
나는 소비 요정이다. 결재를 하는 손이 꽤 재빠르다.
이 말을 듣는다면 누군가는 양 손 무겁게 쇼핑백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물건을 사는 소비는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는. 쇼핑을 하려고 백화점을 갔던 건 일 년 정도 됐으려나. 온라인 쇼핑도 생필품이나 필요한 물건 위주로 한 달에 한두 번 구입할까 말까 하니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횟수가 아니라 쇼핑 금액이 중요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런 내가 과소비하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무언가를 배우는 일.
무언가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과감하게 투자한다.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뭐든 배우면 무조건 남는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이런 마음자세로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일 년에 두 가지 정도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꾸준히 도전해보자는 의식적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의 소비패턴을 살펴보면 자기 계발이 차지하는 비용이 압도적이다. 그래서 여전히 통장이 텅장인가 싶다.
나는 배움이 좋다. 시간이 흘러 헤지고 닳아 가치가 줄어드는 값비싼 물건보다 나에게 투자해서 배움을 장착해놓으면 반영구적이다. 그리고 무겁게 치렁치렁 들고 다니지 않아도 내가 가는 곳 어디든 몸에서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다.
물론 항상 성공할 수는 없어서 나에게 맞는 취미를 찾는데 기회비용도 많이 들였지만 대부분은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배운 것들 중에 내 삶의 품격을 올려준 취미에 대해 몇 가지 정리해본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임을 밝힌다.
수영은 우연한 기회에 배웠다. 예전에 근무하던 학원에서 같이 일하던 선생님이 수영을 배우고 싶은데 혼자 다니기 멋쩍다고 나를 데리고 간 게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진도가 지루하지 않았고 실력이 쭉쭉 느는가 싶더니 평영에서 고비를 맞았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다 두 달을 쉬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수영을 배운 기억이 좋았는지 후에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수영장 물을 배불리 먹긴 했지만 평영에서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순탄하게 접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고비. 접영을 다 마스터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면서 지금까지 '수영 휴식'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운동에 대해 물어오면 수영을 배워두면 좋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다닌다.
수영은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여행을 야무지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준 보석 같은 요소였다. 특히 휴양지로 떠난 여행에서. 하릴없이 호텔에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유유자적하는 것도 좋았고 불빛과 달빛이 앙상블을 이루는 밤에는 은은하게 반짝임이 어린 수면에 고요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여행에서의 시간을 더 몽글몽글하게 그리고 호사스럽게 만들어 준 효자종목 되시겠다.
게다가 나는 수영을 배우고 나서 허리 통증으로부터 해방됐다!
'지구의 70%가 바다인데 프리다이빙을 배우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구의 30% 밖에 즐기지 못하는 겁니다'라는 문구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결제했다.
요즘 프리다이빙을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바다에서 아름답게 유영하는 인어가 되고 싶다는 판타지를 갖고 있어 배웠는데 이 역시 좋았다.
깊은 수심(5미터 깊이의 수영장에서 배웠다)에서도 겁먹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법을 배우고 물에 대한 공포를 바싹 느끼면서도 놓아버릴 수 있는 이중적인 경험을 했다. 이퀄라이징의 벽 앞에서 죽음의 공포 비슷한 것도 느껴봤지만 수면 위로 부르르 솟구치는 느낌이 좋았다.
호기롭게 바다 실습 과정까지 신청해놓고 이퀄라이징(연습을 게을리 한 나쁜 학생)과 이사의 한계에 부딪히며 풀 자격증에서 그쳐야 했지만 동남아를 여행 간다면 다시 도전해서 자격증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내가 테니스를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을 줄이야.
대학교 때 같은 과 동기가 자기가 가입한 테니스 동아리에 들어오라며 한 학기 내내 줄기차게 권할 때도 귓등으로 들었는데 교내에서 열린 전국 대학교 테니스 오픈을 구경 갔다가 코가 꿰었다. 숨 막히는 랠리 끝에 포인트를 따내는 긴장감은 절로 주먹을 쥐게 했고 청량한 계절 아래 멋짐을 뿜뿜 내뿜으며 운동하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너무 멋있어서 테니스에 대한 호감을 느꼈다. 그다음에는 제 발로 동아리를 찾아가 가입했다.
라켓의 스위트 스폿에 맞아 네트를 너머 쭉 뻗어나가는 공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힘껏 휘둘러 온 힘을 싫어 보낼 때마다 스트레스도 같이 날려 보내는 느낌이 든다.
특히 봄에 녹음이 적당히 우거진 코트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테니스를 칠 때면 그 옛날 행복한 기억으로 빼곡한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여전히 행복하다. 적당히 격렬하고 오지게 재미있다.
지금도 동기들이 가끔 "너처럼 운동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애가 우리 동아리 안 오고 영자신문 같은 동아리 들어갔어봐. 어쩔 뻔했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테니스와 동아리 생활에 푹 빠져 살았다. 나의 대학생활은 테니스를 만나면서 인생의 황금기가 되었다. 고민 따윈 다 잊고 몰입하게 해주는 테니스 덕분에, 그리고 여전히 가족 같은 동기들 덕분에.
무용하는 여자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풀거리는 스커트에 팔랑팔랑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 그 모습을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근력운동이 수반된다는 건 배우고 나서야 깨달았다.
늘 책상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일을 하다 보니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적인 운동보다 동적인 운동이 잘 맞는다는 생각 끝에 요가와 고민하다 시작한 게 발레였다.
취미로 7개월 정도 배웠는데 그 효과는 눈에 띌 만큼 놀라웠다.
나날이 유연해지는 몸을 보는 것도 즐겁고 숨어있는 키를 1cm라도 찾아낸 게 호들갑스럽게 좋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느낌도 재미있고 몸의 자세가 점점 곧아지는 것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오래 할수록 참 좋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제발 가늘고 길게 오래도록 했으면 좋겠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호기심이 일면 이것저것 한 번씩 찔러본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배우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운동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중간중간 휴식기가 생기고 할 일 목록에서 늘 후순위로 밀려 당연한 습관으로 만드는 게 아직은 어려운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나의 삶을 질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당신도 기회가 된다면, 돈을 투자해서라도 조금은 특별한 취미 하나쯤은 가져보길 권한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