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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Apr 09. 2020

엄마 저 독립할게요

그녀의 독립투쟁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권자 중 한 명이었다. 집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결정을 알리는 내 전화를 받고 엄마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셨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걱정과 염려는 나의 독립을 휩쓸어가는 거센 물살이 될 터였다. 어떻게든 물살을 헤치고 저 편의 기슭에 올라서야 한다. 이 물살을 거스르지 못하면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게 뻔했다.

나는 점심 먹는 일도 뒤로 한 채 한참이나 전화를 붙들고 엄마를 설득했다.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엄마가 드디어 입을 떼셨다.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한다고 결정하고 엄마한테 통보한 거네. 네 마음대로 해. 한 번 해보든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엄마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래도 허락을 받아냈다고 방방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자마자 부동산 사장님께 연락해 계약 의사를 밝히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독립의 첫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며칠 후, 부모님과 함께 부동산을 방문해 계약을 진행하고 집도 다시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이사 날짜는 한 달 후인 6월 중순으로 잡혔다.

내 이름으로 부동산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잔금을 치르고 나니 비로소 긴장이 되고 떨렸다.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앞으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했지만 설레기도 했다.

그때부터 한 달 동안 바쁜 독립 준비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마뜩잖아하셨다. 

제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던 난 공부방 준비보다 혼자 지낼 나의 공간을 구상하는 데 더 많은 정성을 쏟았고 그런 부분이 은근히 드러날 때마다 엄마는 따끔하게 질책하시며 쓴소리를 하셨다.


엄마와 가전을 보러 돌아다니는 일은 기분이 묘했다. 매장 직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신혼살림을 보러 오셨냐며 추측성 인사를 건넸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그래서 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내뱉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마치 불효녀가 된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엄마는 내가 독립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넌 지금 공부방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 문제야."라며 그동안 저축해 둔 돈을 창업 자금으로 써버리고 혹시라도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셨다. 남자 친구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며 갑자기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그 정도로 엄마에게 큰 딸의 결혼은 밤잠도 설치게 만드는 큰 숙제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내가 제대로 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 내 인생을 그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데 어떤 매력 있는 사람이 나에게 끌릴까 싶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내가 능력이 출중해서 상대의 조건이나 배경을 보고 저울질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결혼보다는 분명히 다가올 나의 미래가 중요했고 일이 우선이었다.


이 일이 훗날 불씨가 되어 엄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은 내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은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면 내 인생이 독립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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