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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Apr 08. 2020

코 앞으로 다가온 독립 기회

독립을 결심하다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간 집은 상가 건물 바로 위에 위치해있고 길 맞은편과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두 개나 인접해있는 그야말로 목 좋은 곳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작은 도로를 하나 끼고 마주하고 있었으니 학군은 더할 나위 없이 괜찮았다.


영어 공부방을 운영하시던 선생님은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해야 해서 급히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대단지 규모의 신축 아파트이고 입주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전월세가 무척 저렴했고 물량도 많은 편이었다. 타지에 살면서 투자개념으로 분양을 받은 주인들이 많은 편이라 공실도 많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집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자 같이 갔던 선생님은 은근한 목소리로 위치가 괜찮다며 소곤거렸다. 무엇보다 저렴한 시세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고민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같이 간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지금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어쩌면 독립은 머나먼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촉이 발동했다.


밥을 먹는 내내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통장 잔고와 예비비 등을 계산해봤다. 전세로 입주하면 6개월 정도를 버틸 여유자금도 없는 빠듯한 예산이었지만 월세로 시작한다면 무리하지 않고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는 그때 부동산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공부방 선생님께서 학생이 열댓 명 정도 있는데 이사 가기 전에 학생들 어머님께 선생님도 소개해 드리고 가시겠다고 전화가 왔네요. 나쁘지 않은 조건인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세요. 요즘 입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계약 서두르시는 게 어때요?"


그 전화를 끊고 계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존에 있던 학생이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차피 제로에서 시작할 거, 한 두 명이라도 알고 시작하면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빠른 이사를 위해 공부방 선생님께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주신다는 게 감사했고, 원래 영어 공부방이 있던 자리니 내가 공부방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순진한 초보 원장의 오판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긴 했지만.


잠시 고민하다 빠른 손놀림으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여기 ㅇㅇ에 구경 왔다가 집을 하나 봤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공부방을 할 계획이고 괜찮은 곳이 있어서 계약을 하려고 한다는 설명에 엄마의 무거운 침묵이 내리 앉았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딸의 독립 계획이 무척 황당하셨으리라.


"일단 집으로 와. 엄마랑 상의해보고 결정해. 얘기만 듣고 결정하기엔 너무 갑작스럽다."

"저 여기에 공부방 하시는 선생님이랑 같이 보러 왔는데 선생님도 위치가 너무 괜찮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고 그러시는데 계약하고 갈까 해요."

"... 계약하겠다고 마음은 다 먹었네? 결정하고 전화했구나?"


엄마의 뾰족한 목소리가 마음을 콕콕 불편하게 찔렀다.

'이 산만 넘으면 독립이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라고 심장이 불끈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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