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할 것인가>
'사랑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다. 찰나의 스침만으로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인연, 잠깐의 어긋남으로 인해 영원히 평행선을 긋는 이별을 보고 있자면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영원한 진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과연 타이밍이 중요한 게 우리네 사랑뿐일까? 대학 원서의 마감 접수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팅, 면접을 보는 날짜, 중요한 사업 미팅 등 우리의 인생은 시간이라는 톱니바퀴에 맞춰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타이밍은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걸쳐 운명의 파수꾼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언제 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을 바꿔놓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타이밍'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할 요소이다.
'타이밍'과 관련하여 내가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는 매일 일과를 체크하면서 오늘 끝내야 할 많은 일들을 도대체 '언제 (다) 할 것인가'였다. 날마다 적는 할 일 목록이 적게는 두세 개, 많게는 대여섯 개나 되는데 모두 다 중요해 보여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거니와 그 일들을 하루 중 언제 한다고 끼워 넣어야 좋을지 고민하는 날들이 많았다. 아무 때나 정해놓고 시작하면 좋으련만 마음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언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누군가가 나서서 친히 정리해준다면 그분을 항상 가까이에 두고 극진히 모실 의향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몸 안에 시계가 하나씩 있다. 이 시계의 이름은 '시교차 상핵'인데 우리의 체온이 오르내리는 것을 통제하고 호르몬을 조절하며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도록 도와준다. 시교차 상핵의 타이머는 약 24시간 11분으로 하루보다 조금 길다. 그래서 일출이나 일몰 같은 환경적 신호와 출근 시간 같은 사회적 단서를 사용해 내부와 외부의 주기를 조금씩 조정해가며 몸 안쪽과 바깥쪽의 시계를 맞추는 '동조entrainment'가 일어난다.
이러한 생체 기능은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되는 정서적 균형 패턴을 만들어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전에 기분이 고조돼 점심시간에 최고치를 찍고(최고점) 오후에 기분이 다운되어 안 좋았다가(최저점) 다시 저녁이 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양상(반등)을 보였다. 정서적 균형 패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의 감정이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고 잘 이용하면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과소비를 해서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을 짓을 했더라도 언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분은 우리의 성취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의 정서적 균형 패턴에 따라 업무 효율이 달리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나의 체내 시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서적 균형에 따른 패턴이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들의 체내 시계가 모두 동일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유전적인 요인이나 나이와 같은 요소에 따라 사람마다 갖고 있는 생체 시계가 각기 다른데 이에 따른 분류를'크로노 타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달새'형, '올빼미'형이 크로노 타입에 따른 분류 유형에 속한다. 사람들 중 약 60~80%는 종달새형이나 올빼미형의 중간인 '제3의 새' 유형에 속한다고 한다.
(위의 표를 보고 내가 잠드는 시각과 일어나는 시간의 중간이 몇 시인지를 확인해보면 나의 크로노 타입을 알 수 있다. 나는 예전에 새벽 2시에 자고 오전 9시에 일어나서 중간 시간이 새벽 5시 반인 '제3의 새' 유형이었는데, 요즘에는 밤 11시 반쯤 잠들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종달새'의 삶을 살고 있다. 종달새가 되려면 일찍 자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크로노 타입에 속하는지 알고 나면 어느 시간대에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알 수 있다.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날카로운 분석을 요구하는 일은 아침에, 아이디어나 창의력이 필요한 일은 오후나 저녁에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침부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머리를 싸매도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언제 해야 할지를 알고 나면 일과 시간표도 순조롭게 짤 수 있다.
우리는 새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새로운 일을 하거나 계획을 실천할 때 마음속으로 '1월 1일부터'라는 시작점을 세워 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계획을 지키는 날 보다 지키지 않는 날이 많아진다.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오늘이 바로 1월 1일'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사람들이 많은 의미를 부여해 새롭게 시작하는 특별한 날을 '시간 경계표'라고 부르는데, 자신만의 시간 경계표를 많이 만들어두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해까지 기다리지 않고 좀 더 빨리 시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경계표와 개인적 경계표라는 두 가지 형태의 시간 경계표를 사용한다.
사회적 경계표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계표로 매월 1일, 공휴일, 월요일 등이 해당된다. 개인적 경계표는 각자에게 의미 있는 날로 생일, 기념일, 처음 만난 날 등이 해당된다.
사람들은 위와 같이 정해 놓은 사회적, 개인적 경계표를 새로운 시작을 하는 계기로 삼는 데 이를 '새 출발 효과fresh start effect'라고 한다. 시간 경계표가 많은 수록 새롭게 시작할 이유도, 기회도 많아진다. 꼭 1월 1일을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을 기준점으로 세우면 흐트러지던 습관이나 잘못된 실수를 수정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얻게 된다. 개인적 경계표를 기준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는 매달 1일을 나의 개인적 경계표로 삼고 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고 새로운 달을 시작하는 날. 나에게는 1년에 최소 12번의 새 출발 기회가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독립해서 첫 수업을 시작한 날 등은 무언가를 돌아보고 점검할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날이다.
우리는 이제 하루 중 언제 내가 가장 깨어있고 언제 휴식이 필요한 지 큰 그림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혹시 내용을 스킵했을 사람을 위해 다시 정리한다면 보통의 경우 오전에 뇌가 가장 활발하고 오후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결국 똑똑하게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이해가 먼저 수반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어떤 유형인지, 오전에 뭐를 잘하고 오후에는 뭐가 필요한지. 반등이 일어나는 저녁에는 뭐를 하면 좋을지. 기본적인 패턴만 파악해도 훨씬 효과적으로 그리고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다. 오후에는 대체로 기분이 다운되는 패턴을 갖는다는 것을 인지하고만 있어도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훨씬 더 유연해지리라 생각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24시간이 주어지지만 다 같은 24시간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새로 시작할 기회가 있지만 그것을 알고 적용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이에 대해 적절히 파악하고 나의 생활에 적용해 본다면 같은 양을 투자해도 더 높은 효율을 끌어낼 수 있다. 이 작은 차이가 눈발 날리듯 쌓이다 보면 어느새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1월 1일'에 얽매여 남은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을 기계적으로 쪼개지 말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꼭 맞춘 사용법'을 실천해보자.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다. 사랑은 타이밍, 아니다. 이제 '인생'은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