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치 May 18. 2020

비 오는 날은 후루룩 바지락 칼국수

저녁 먹으며 엄마 생각


까만 하늘이 무섭게 찌푸려지더니 후두둑 소리를 내며 한바탕 샤워를 쏟아낸다.

뒤이어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번갯불이 번쩍이며 빛난다.


한창 하던 수업을 마무리하자 아이들이 하나 둘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이 정답게 엄마를 부르며 통화하는 모습을 보니 주말 이틀 밤을 집에서 실컷 보내고 아침에서야 왔는데도 우리 엄마가 또 보고 싶다.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여기 혼자 덩그러니 남겠지.


"비 온다고 엄마가 데리러 오시고 너희들은 좋겠다아."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부러움이 꾹 짜 올린 치약처럼 주욱 올라온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왜요? 선생님은 비올 때 엄마가 데리러 안 왔어요?"라며 해맑게 묻는다.

"응, 쌤은 강하게 컸어! 그때는 핸드폰도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도 못했지."

"정말요? 그땐 핸드폰이 없었어요? 우와, 신기하다!"

상상할 수 없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 아이들이 호들갑이다.


"선생님은 비 오는 날 학교 현관에 내려갔는데 엄마가 안 보이면 그냥 비 맞고 집까지 뛰어갔어. 엄마가 못 오신다는 뜻이었거든."




오늘처럼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는 날, 그런데 우산이 없는 난감한 날.

우리 엄마는 다양한 이유로 학교 1층에서 만날 수 없었다.


집에 어린 동생이 있어서. 내가 우산을 챙겨간 줄 알고. 비가 오는 줄 몰라서. 집이 멀지 않으니 뛰어오면 금방이라서 등등.

그런 날이면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친구 엄마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재빠르게 빗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고 뜨거운 동지애를 느끼며, 나도 애써 덤덤한 척 빗속으로 덩달아 뛰어들곤 했다.


그렇게 잦은 실망이 습관이 되고 큰 기대 없이 학교를 나서다 '가뭄에 콩 나듯' 우산을 들고 1층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발견하면 얼마나 설레고 쑥스러운지.

엄마 옆에서 차박차박 소리를 내며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엄마와 둘이 조금만 더 걸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둥둥 떠다녔다. 엄마의 사랑을 충만히 느끼는 소중한 하루였다.


이제 그 아이는 너무도 커버려서 더 이상 학교에서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엄마를 기다릴 수가 없네.

추억이 방울져 창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어쩐지 서글프구나.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헛헛한 마음에 냉장고를 열어본다.

엄마가 갓 담아주신 김치와 바리바리 챙겨주신 식재료가 한가득이다.


그래, 오늘은 비가 오니까 바지락 잔뜩 넣고 시원한 칼국수를 끓여먹자:)



비 오는 날 먹는 후루룩 바지락 칼국수


1. 해물육수 팩을 팔팔 끓이고 대파와 양파도 큼직하게 썰어 육수에 넣어준다.

2. 육수가 한소끔 바르르 끓으면 육수 팩을 건져내고 해감한 바지락을 넣어 거품을 걷어내며 육수를 낸다.

3. 칼국수 면은 물에 헹궈서 밀가루를 씻어내고 끓는 물에 투하

4. 냉동실에 있던 새우도 한 줌 넣고 애호박과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국물에 감칠맛을 더한다.

5. 간은 국간장 한 숟가락과 멸치액젓 한 숟가락으로 마무리


냉장고에 있는 빈약한 재료로 휘리릭 끓이고 나니 국물 한 숟갈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바지락 칼국수가 완성이다.

한 젓가락 길게 뽑아 입에 물고 엄마가 담가주신 김치 한 입 아삭하게 베어 먹으니 쓸쓸함이 저 아래로 쑤욱 내려간다.

엄마가 끓여주신 칼국수만은 못하지만 엄마의 사랑이 담긴 재료로 만들어서인지 입 안 가득 행복한 맛이다.


주말에 고모들과 1박 2일 여행 가신다고 하셔서 보고 싶으면 평일에도 오라고 하셨는데 튕긴 게 못내 아쉽네.

일요일에 또 갈게요 엄마. 이 밤 또 엄마 생각이 나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를 내려놓고 산책을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