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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치 Sep 21. 2020

지금, 달려야 하는 이유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미친 듯이 달리고 싶어졌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나무와 풀잎 향이 상쾌하게 실려온다.

발갛게 타오르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나면 어둑하게 내려앉은 땅거미 주위로 따뜻한 불빛이 총총 떠오른다.

무심하게 귀에 걸은 이어폰에서는 심장을 쿵쿵 울리는 비트가 경쾌하게 퍼지고 그에 맞추기라도 한 듯 내 온몸은 둥둥 울리는 북이 되어 짜릿한 박자를 탄다.

발을 이리저리 부드럽게 까딱거리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마친 뒤 발걸음을 하나 둘 옮기면 비로소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내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달려나갈 시간이다.


달리기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내 몸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뛰어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숨이 헐떡이면 잠시 멈추고 걸었다가 다시 살만해지면 또 욕심을 내서 속도를 올려본다.


한여름의 작열하던 더위가 물러간 뒤, 요즘 나의 가을밤은 걷기와 달리기가 한 데 뒤섞여 탄력을 받고 진행 중이다.

걷고 뛰면서 맞이하는 새로운 계절이 반갑고 주위 풍경에 스며들어 해방감을 느끼는 찰나의 시간이 달콤하다.

나는 이렇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된다.


켈리 맥고니걸 박사의 책 <움직임의 힘>에서는 인간이 가진 생리 기능의 모든 측면이 움직이는 것을 보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 뇌의 목적은 오로지 '움직임을 유발하는 것'이고 움직임은 우리가 세상과 교류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에 움직임에는 보상이 뒤따른다고 말이다.


사람이 중간 강도로 힘든 일을 약 20분 이상 꾸준히 하면 우리 뇌에서는 대부분이 알고 있는 엔도르핀 외에도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화학물질이 나온다. 이 화학물질은 대마초의 효능과 비슷한데 주로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통증을 가라앉히며 기분을 고양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화학물질이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이 수 시간의 노동에서 오는 걱정이나 불안,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을 줄이고 생존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달리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시적 보상이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요즘, 많은 현대인들이 우울과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것을 떠올린다면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이 항우울제 같은 강력한 치료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특히 인간의 경우, 주 3회씩 6주 동안 운동을 하면 불안감을 다스리는 뇌 부위에서 신경 연결이 늘어나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니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 주는 혜택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움직임은 개인적인 활동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신체 활동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동안 타인과 비슷하게 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거울 신경계가 있는데, 이 거울 뉴런은 내가 운동하면서 눈이 마주치는 상대방의 표정과 거친 숨소리, 몸짓에 실린 감정까지도 지각하고 비슷하게 느끼면서 그 사람을 비슷하게 흉내 내기도 하고 나는 당신과 같은 부류라는 사인을 보낸다. 이처럼 같은 행동을 경험하는 데서 느끼는 '체화된 공감'은 타인의 움직임에 본능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 사람과 사람을 더 가깝게 이어주는 실타래가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사람은 타인과 자연스럽게 동기화Synchronization가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연결됐다'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의 심장박동이나 호흡, 뇌 활동 같은 생리적인 기능도 그 사람과 보조를 맞추게 되고 이는 낯선 이와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만들어 그를 도와주고 배려하고 싶은 마음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태초부터 우리의 DNA에 새겨져 있었는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들에게 신체 활동을 유발하는 부족 전통문화나 춤이 구성원들 간에 동기화를 유발해 서로의 유대를 다지고 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는 강력한 방법이었다는 사실에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가 사무실을 같이 쓰는 직장 동료보다는 수영장 레인을 함께 돌며 폐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함께 이겨낸 사람에게 더욱 끈끈한 결속력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 <인턴>의 마지막 장면에는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와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이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운동이 개인의 행복은 물론 공동체 내에서의 동기화 역할도 수행한다는 관점으로 볼 때, 이 장면은 일에 허덕이며 사람과 관계 맺는 데 서툴고 불안정한 삶을 살던 줄스가 마침내 개인의 행복도 찾고 주변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은 인류 역사에서 단순히 개인의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스멀스멀 나를 잠식하는 우울감을 떨쳐내고 지금보다 더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당장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고독에 허덕이기보다 같은 신체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스스로가 사회 구성원의 당당한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위해서도 운동은 필요하다.


기분 좋게 내 몸을 휘감는 시원한 바람, 핑크색과 보라색으로 아름답게 물든 노을, 흙 위에 스케치를 그려내는 운동화 발자국, 전력질주하고 싶을 정도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강한 비트의 음악.

온몸의 감각을 열고 운동하고 싶은 열정에 불을 지피는 '나만의 쾌락 광택제'를 쫓다 보면 발걸음은 어느새 땅 위를 폴짝이며 뛰어다닐 것이다.


<움직임의 힘>을 읽는 동안 나의 움직임에서 흘러나오는 행복의 근원을 찾아내고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 달리면서 느꼈던 쓸쓸함이라는 구덩이를 한껏 메워주고 함께해 준 운동 메이트 '워크 온' 멤버들이 진심으로 고맙고 그리웠다.


움직임이 가진 위대한 힘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나의 삶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일만 남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자.

움직임이 우리에게 주는 근원적인 힘이 지금, 우리가 달려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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