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구하고, 짐도 풀고 이제 남은 것은 1년 동안 묵을 나의 동네에 정을 붙이는 것이었다. 막 20살이 되어 집을 떠나 머무른 기숙사, 나의 첫 자취였던 대구에서 정을 붙이기 위해 주변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니 청소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소를 할 때 집 구석구석 나의 손이 닿지 않으면 어디에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손이 자주 닿지 않는 곳에 먼지가 잔뜩 쌓여 '나의 공간'이 아닌 '미지의 공간'이 된다. 나만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곳이 내가 잘 모르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감각을 싫어하는데 그런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집 주변을 잘 알고 있어 지도 맵을 사용하지 않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동네'로 칭할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낯선 땅에 홀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안감을 가득 껴안고 혼자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의 경우 '차'는 신발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없다. 짧은 5-10분 거리여도 프리웨이를 타는 경우가 많아 차가 없으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걸어서 갈 수 있다면 행운인 것이다. 미국에서 1년이 다되어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지도를 볼 때마다 황당하다. 다시 돌아와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찾기 힘든 것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이 난무하다던데, 노숙자가 많다던데, 치안이 좋지 않다던데 등의 불안의 소리들은 나를 집안으로 밀어 넣기에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좋든 싫든 1년 동안 생활해야 하니 밖으로 나왔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하는 곳이 최소한 어떤 곳인지는 알아야 했으니까.
맙소사.
집에서 나온 지 2분도 지나지 않고 위기에 봉착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것이 횡단보도? 쌩쌩 차들만 달리고 있는 도로에 덩그러니 두 개의 줄만 직 그어져 있는 이게 횡단보도라니? 머릿속엔 수많은 물음표가 떠 다녔다. 횡단보도의 버튼을 누른 후 이걸 건너도 되는 건지, 건너다가 차가 나를 쳐버린다면, 신호도 아닌데 건너냐고 따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의 잡다한 생각을 하며 횡단보호 앞에서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는 건 맞는지 의문 가득 한참을 서 있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생각을 한 찰나 불빛이 바뀌었다. 무수히 많은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고 수많은 물음표를 뒤로한 채 쫓기듯 나 홀로 런웨이를 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길거리를 걷는 게 이렇게나 어색한 행위였던가, 내 옆을 쌩쌩 지나가는 차 말고는 길거리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또 내가 모르는 미국의 걸어선 안 되는 거리를 걷고 있는 게 아닌 건지 의문이 들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의문을 가지며 걸었던 적이 있었나? 마치 모든 게 처음인 어린아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낯설고 두렵고 이상했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했으며 하늘이 이뻤고 성취감이 일렁였다. 내가 걸어서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을 넓힌 기분, 거대한 미국이라는 땅에서 나의 세상이 조금은 넓어진 기분. 긴장하느라 잔뜩 경직된 몸을 좀 풀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프라이트를 사들고 신나게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평생 내가 본 파란 하늘과 비슷했지만 너무나도 달랐으며 아무도 없는 이 거리가 고요해 잠깐 편안하다고 느꼈다. 걷는 것을 밥 먹듯 하던 나에게 '산책'이라는 것이 하루의 큰 과업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여담
위에서 언급했던 길을 지금도 자주 걸어 다니는데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와 다르게 현재는 1명에서 많으면 3명의 노숙자들을 마주하곤 한다. LA에서부터 노숙자들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던 말을 크게 실감했던 순간이랄까. 해코지할까 긴장하며 걸어야 하지만 LA의 노숙자들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