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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Mar 12. 2020

편지를 찢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

앨범이 도착했다. 상자 안에 가득 쌓여있는 사진을 바닥에 쏟아본다. 이 사진 저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빠진다. 이 사진은 주로 내 핸드폰에 찍었던 사진을 인화했던 사진이라 얼굴이 잘리기도 하고, 화질이 좋지 않고, 많이 흔들려 있는 사진도 많다. 그런데도 주로 첫째 아이 사진뿐이라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저 사진을 인화했던 시기가 2년 전이니 최근의 사진은 없는 것이다. 최근 사진을 빨리 인화해서 미안한 마음을 좀 씻어야겠다.


그러던 중 카톡이 날아왔다. 한 달 놀이터 카톡방에 기뮨님이 올린 글이다. [한 달 서평] 5기를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 달 브런치]를 신청했지만, 기뮨님의 글이 궁금해서 링크를 따라 들어갔다. 글을 읽고 서로이웃추가를 누르고, 방으로 들어왔다. 편지를 쓰기 위해서 말이다.



[매일서평]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nager128/221849694521


  아이가 자라면서 내 마음속의 아이가 똑같이 자란다는 말을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나는 아이가 울면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잘 달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어떻게 해야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하루 종일 아기 띠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첫째가 5살쯤 되니깐 정말 힘들었다. 첫째도 울고, 3살이 둘째도 동시에 우니 나도 그 자리에 앉아서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육아서적을 정말 미친 듯이 읽었던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서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성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왜 우는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지? 돌아보고 돌아보니 울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잘 울지 못한다. 결혼 전에는 눈물이 나면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 울음을 삼켰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많이 울지 않았다. 왠지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정말 울지 않았던 내가 생각이 났다. 내가 결혼할 때도 피아노 한 번도 쳐본 적 없는 신랑이 축가를 부르기 위해 3달을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이적 '다행이다.'를 피아노 치면서 불러주었을 때, 그 감동에 정말 펑펑 울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정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정말 기쁘고 행복했는데 눈물샘이 고장 났는지 울음이 나오지 않다. 정말 눈만 촉촉해지는 정도로 눈물이 나오다 말았다. 정말 내 감정이 고장 났었나 보다. 슬프면 울어야 하는데 울지 못하니, 그런 나이니 아이가 우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난 그 당연함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크는 만큼 내가 자라듯이, 책을 읽고, 신랑의 사랑, 시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무한한 두 아이의 사랑을 받으며 내 고장 난 마음이 조금씩은 고쳐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보고나 들으면 눈물이 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내 마음이 조금씩 정상적인 작동을 하는구나 하며 속으로 기뻐하곤 한다.


  따뜻한 물 한잔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기뮨님의 글을 통해 나도 편지를 쓰려고,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버릴 편지를 쓰려고 들어왔다. 편지를 한 장, 두 장 쓰다 보니 입에 담지도 못할 욕도 나온다. 욕을 쓰기도 하고 속시원히 편지를 쓰고 나니 희열이 느껴졌다. 편지지 뒷장에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펜으로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다고, 그동안 고생했다. 사랑한다. 마무리하며 편지를 마친다. 이제 편지를 찢을 일만 남았다.


  마흔이 되어서야 그 과거를 직접 대면하고, 편지에 쏟아부었다. 언젠가 또다시 그 아픔이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대면할 용기가 있다. 더 이상 무의식에 꼭꼭 숨겨두고,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부당하면 부당하고 목소릴 낼 것 이다. 이야기하고, 타인의 인정에 타인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온 세상이 나를 사랑하다. 나 역시 온 세상을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과거를 용서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직면은 할 수 있다.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를 힘들어 함을 인정하고,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없음을 알기에 억지로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를 그냥 계속 욕할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온 나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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