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끼 음식 준비할 때마다 아이들의 요구사항은 다르다. 나는 코로나 사태로 집에만 있으면서 한 끼에 국을 두 개 끓이기가 다반사이다. 첫째는 미역국, 둘째의 오뎅 사랑 죽어도 오뎅국 끓여 달란다. 좋아하는 메뉴도 다르다. 어린이집 식판에 반찬을 담으면 놀라울 정도로 남는 반찬은 각각 다르다. 내 뱃속에서 낳은 아이들이지만 정말 둘을 너무 다르다. 첫째와 둘째가 너무 다르다. 성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성향도 취향도 너무 다르다. 내가 어릴 때 참 예민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 두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예민한 것인지? 예민한 아이가 똑똑할 것이라는 속설에 위안을 받으며 어제 에피소드 하나를 남겨본다.
요즘 코로나로 둘은 절친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떨어지지 않고 같이 놀고 있으니, 잘 놀 때도 있지만 싸울 때도 많다. 어제는 인형 놀이를 하며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중 목소리가 커진다.
첫째 : "참, 어이가 없네."
둘째 : "어, 우리 집에는 오이가 있는데?"
첫째 : "아니, 오이가 아니라, 어이!!"
둘째 : "그래, 오이 오이 있다니깐"
첫째는 정말, 혼자 잘 컸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나머지는 혼자서 다 알아서 했다.
하늘이 엄마를 보고, 아이를 내려다 주는 것인지.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엄마를 둔 탓에 정말 혼자서도 척척 잘 해내는 딸을 보면 대견하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딸아, 엄마가 너무 착하게 살아서 하느님이 너 같이 이쁜 딸을 엄마에게 보내주셨나 봐."
진심이다. 내가 이 아이를 통해 받는 사랑은 엄청나다. 엄마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고, 잘하고 싶어서 한 행동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도 많은데 우리 딸은 너무 잘 커줬고, 친정 언니에게서 얻은 '기적의 한글 학습'으로 혼자 한글을 떼더라. 그렇게 혼자 한글을 떼는 것을 보고 공부를 시키면 되겠구나 하고 마음먹고 아이를 앉아 놓고, 공부를 가르치려다. 아이를 잡았던 적이다.
딱 기질이 나랑 같다. 그냥 혼자 가만히 두면 잘한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는 순간 도리어 부작용이 생기는 것, 어쩜 이리 나랑 똑같을까.
둘째는 첫째랑 다르면서도 나와 너무 똑같은 모습이 많다. 뻔뻔하게 배짱 좋은 모습이, 혼자 손을 척척 들어, 무대에 막 올라가서 하는 모습을 보면 천상 내 아들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듯이 나의 두 아이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또 아름답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내가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품 안의 자식도 한 때인데 요즘 코로나로 24시간 함께 있지만 그 사랑을 충분히 못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둘째는 누나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 좋아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눈높이가 달라서 아쉽지만 마냥 누나가 좋아서 따라다니는 모습은 예전 어린 시절 사진에서도 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둘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서로 다르니 서로 다르게 세상을 살아가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오뎅과 시금치, 오뎅국과 미역국을 열심히 끓여야겠지만 이럴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련다. 내가 그렇게 해 줄 수 있음에 내가 그렇게 해 줄 때 감사히 받아주는 아이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며칠 전 잠자리에서 딸이 내 귓가에 이렇게 말을 하였다.
"엄마, 코로나로 엄마랑 함께 하루 종일 있으니깐 너무 좋아요."
코 끝이 찡하다. 첫째는 참 순해서, 혼자 잘해서, 내가 그냥 걱정 없이 일을 했었고, 지금도 휴직이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딸은 그렇게라도 엄마랑 온종일 붙어있으니 좋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