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바틀
뉴욕으로 오고자했던 그 두번째 이유, 블루바틀에 당도했다. 맨하탄 미드타운에 숙소를 잡아놓았던 나는 다소 먼 거리에, 그리고 브루클린쪽에는 지난 여행에서도 많이 와 보지 않았던 탓에 걱정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윌리엄스버그에 도착해서 Verb를 만나고, 이후 홍대 길거리를 걷듯 여기저기 펼쳐지는 흥미로운 샵들의 홍수속에 마치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블루바틀까지 시간을 잊고 걸어올 수 있었다.
블루바틀의 파란색 병 로고는 단순하지만 블루바틀의 이미지를 한번에 각인 시킬수도 있고 상품화 하기에도 최적이란 생각이 들 만큼 강렬했다. 명석한 디자인이 아닐 수 없었다. 멀리서 부터 보이는 작는 파란병의 표시를 좇아 걸어오다 보니 어느새 블루바틀의 문이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블루바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본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하지만 클라리넷 연주자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도, 그리 풍요롭지도 않았던 그는 인생의 플랜 B가 필요했고 그 방법으로써 늘 흥미로워하던 '커피'를 선택했다.
그는 커피 음료를 판매하는 것 보다는 원두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로스팅해서 팔기를 원했는데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에 오클랜드 마을의 한 창고를 빌려서 처음으로 로스팅 사업을 시작했다고한다. 그가 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The Blue Bottle Craft of Coffee'책의 서두에 보면 그가 어떻게 해서 커피 비지니스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커피에 대한 그렇게 큰 지식과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까지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커피 업계와는 차별화 된 방법,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맛을 찾을 때까지 스스로 경험해보고 알아갔던 끈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종업계의 동향이라던지, 방법이라던지 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믿고 따라갔다는 것이 블루바틀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준 계기가 된것이 아닌가 한다. 매번 로스팅을 전문적으로 배운적도 없는데, 바리스타 클래식 출전이니 뭐니 하는 타이틀도 없는데 괜찮을까? 사람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타이틀을 만들어놓고 사업을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늘 남의 시선에 휩쓸려 사고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게 됐다.
블루바틀은 스텀프타운보다는 모던한 인테리가 돋보였다. 전체적으로 하얀 느낌을 주는 매장과 밝은 톤의 나무가 주는 느낌이 따뜻했고 거기에 강렬한 파란색 병 로고까지 합쳐져 전체적으로 모던하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확실히 시장성으로는 스텀프타운보다는 블루바틀이 좋아보였다. 잘 만들어진 로고 하나가 대중에게 각인 되는 힘도 무시 할 수 없으니까.
첫번째 방문에서는 그다지 많은 사람으로 붐비지 않았는데 그곳에서는 한적하게 책을 읽거나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위치적으로도 그렇고 주변 회사원들과 관광객이 많이 섞여있던 맨하탄 미드타운의 스텀프타운과는 달리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블루바틀에는 자유분방한 복장과 생활패턴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보였다.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지켜보고 있자니 여러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쪽으로는 길게 작업실이 펼쳐져있었다. 홀(hall)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보다 더 넓어보이는 작업실에서는 주로 로스팅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좋은 원두와 원두의 신선도에 비중을 두는 로스터리커피숍답게 배전한 원두를 최상의 시기에 사용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듯 했다.
한가지 또 눈에 들어왔던 것은 베이커리들이었다. 미드타운에 있는 스텀프타운에서보다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베이커리를 팔고 있었는데 진열된 모양새와 베이커리가 차지하고 있는 섹션의 크기와 위치만 보아도 블루바틀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케익과 과자류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블루바틀의 책에서도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 로스팅하는 방법 등 커피에 관한 이야기 뿐만아니라 그에 곁들일 수 있는 베이커리에 관한 레시피까지도 꽤나 높은 비중으로 실려있다. 그리고 아래 놓여진 초콜릿들은 스텀프타운에서처럼 매스트 브라더스의 초콜릿을 사용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인지도가 높은 만큼 뉴욕에 있는 스페셜티 커피점들에서는 대부분 매스트브라더스의 초콜릿을 사용 하고있었다.)
넓은 내부를 쉴새없이 둘러보며 블루바틀에 대한 감상을 머릿속에 담고 있을때 줄은 점점 줄어들어 주문의 순서가 다가오고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얼른 메뉴판을 바라봤고 이곳에서도 역시 스텀프타운에서처럼 여러가지 시럽이나 파우더를 사용한 베리에이션 음료는 판매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핸드드립커피와 여러가지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 에스프레소 음료를 머신별로 두 부류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첫번째 방문에서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다. 영국의 몬머스에서도, 스텀프타운에서도 그랬던것 처럼 내가 방문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았던 드립 커피를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바에 의하면 제임스는 에스프레소보다는 그 이외의 방법으로 추출한 커피에 더 관심을 가진 듯 보였다. 그의 생각을 반영하듯 매장에는 그 어떤 스페셜티 로스터리샵에서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갖춰진 푸어오버 커피 장비가 갖춰져있었다.
드립 커피와 함께 곁들여먹을 쇼트브레드도 종류별로 주문해 보았는데 관광객들로 늘상 바빠서 그랬는지 직원의 친절한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을 고를지 메뉴판을 보며 잠시 망설이는 나를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몇가지 질문에 싸늘한 단답형 대답을 내놓은 그의 얼굴을 지금까지도 기분나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도 좋고, 굳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손님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 의무도 없고, 그걸 기대하고 있지도 않지만 친절까지는 아닐지언정 '불친절'로 느끼게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커피에 대한,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오만함을 착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며 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회사에서는 교육을 해야하지 않을까싶다. 한국에 오기전까지 두어차례 더 방문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커피맛이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태도 탓인지 내 기억에 커피향으로서 가장 그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한 곳이 바로 블루바틀이다. 이미 스텀프타운이나 런던의 몬머스에서 좋은 원두의 강렬한 인상을 받은 뒤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뉴욕을 떠나기 전 다시한번 방문한 블루바틀에서는 카페라떼를 주문해서 에스프레소를 이용한 커피도 맛보고 기념으로 블루바틀의 책을 한권 구입했는데 어쨋든 오클랜드의 작은 차고지에서 시작해서 세계 최고의 커피전문점으로 발전하게 된 그 스토리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제임스프리먼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책의 구매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지만 다시 윌리엄스버그를 방문했을때는 직원의 친절한 얼굴을 볼 수 있으면 하는 안타까운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나라에도 곧 내년 3월이면 블루바틀이 삼청동에 매장을 낸다고 하니 더 이상 전처럼 흥미로운 곳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네슬레에게 4500억원 정도에 69프로의 지분을 팔았다고 하니.. 결국은 스타벅스의 하워드슐츠가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창조물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은 제임스에게는 없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