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속에서 일어나라

by Tae

누구나 한번쯤 누군가를 저주한다. 시도때도 없이 복수심이 차올라 자신의 무자비함을 상상력의 끝까지 밀어부치고, 상대방의 너덜너덜한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 모든 지능을 동원한다.


미리 그 이야기를 써본 사람으로써(혹은 쓰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야기해보자면, 그 이야기는 픽션이 된다. 아니 사실은, 대개 그런 이야기의 정 반대가 현실이 된다. 당신의 무자비함은 상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마치 자애를 베푸는 듯 보일테고, 상대방은 너덜너덜해지긴 커녕 더 떵떵거리고 살 것이다.


저주의 끝에서 마주하는건 자기혐오와 시간낭비다.

누군가를 저주했다는 자괴감이 한번 당신을 할퀼거고, 그렇게 공들여 누군가를 저주했음에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당신을 걷어 찰 것이다. 저주의 본질은 인간성과 긍정의 타락이다.


쇼펜하우어는 오로지 본인만이 자신의 현재를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에 머물것인지, 현재에서 미래를 보며 앞을 보고 살지는 본인의 손에 달려있다. 과거에 얽매여 본인의 인간성을 낭비하지 말자. 노숙자에게 적선을 하고, 길잃은 고양이에게 자애를 베풀듯, 현재의 본인에게 인간성의 보존이라는 자애를 베풀자.


나머지 해결되지 않는 감정은 전부 불태워버려라.

운동이 됐건, 글쓰기가 됐건, 그림이 됐건, 허공에 욕을 하건 마음 속 모든 장작을 동원해 전부 불태워버려라. 장작이 모자라면 가족,친구 혹은 심리상담사에게서 더 구해서 전부 태워버려라.


그리고는 잿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나라.

무엇이 타버렸건 새롭게 피어난 날개를 달고 뒤를 보지말고 다른곳으로 날아가버려라.

세상은 충분히 넓고, 당신의 둥지를 위한 한줌의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