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양 Sep 16. 2024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이유는 뭘까. 어릴 적 부모님의 맞벌이 때문일까, 고등학교 때의 따돌림 때문일까, 아니면 이십 대 초반 아이돌로서의 실패 때문일까. 딱히 하나로 정의할 수 없지만, 그리하여 내 삶은 흘러갔고, 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믿지 않으면서도, 곁에 사람이 없을 때 느껴지는 그 공허함을 참지 못하는 그런 사람. 상상해 보라. 마음의 상처를 흉기 삼아 들고 다니는 강도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솔직히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일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으니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독립영화를 함께 볼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내가 보자고 한 그 영화에서 내가 먼저 잠이 들어 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서점에 들러 책을 사 주겠다고 했고, 그때 네가 골랐던 책이 권여선의 소설이었는지, 김애란의 소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네게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첫눈이 내리기 전에 너와 그 눈을 보고 싶었다. 네 가방 속에 담긴 무언가. 문뜩 나도 그 무언가 중 하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행동이 필요한 건 언제나 생각 하나뿐이다.



서른이 되어 맞이한 사랑은 대학 시험만큼이나 어렵다. 서로의 간격이 너무 크다. 내가 글을 쓰고 읽는 동안, 너는 어딘가로 떠나야 했고, 우리는 함께 볼링을 치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어야만 했다. 이 여름을 견딘 우리를 생각해 보라. 왜 책을 읽는 곳이 침대가 아니라 카페여야 하는지, 나를 설득해 보라.



나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버스나 전철에서도 글을 쓴다. 하지만 정작 너에게는 제대로 된 글 한 편 써준 적이 없다. 너는 늘 내 옆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나에게서 떠나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너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진지하게 헤어지자고 했던 내 말에도, 너는 마치 아이처럼 “또 그런다”라며 웃곤 한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도 잘하지 않고, 먼저 스킨십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좋은 음악을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해질 무렵이나 해 뜰 무렵 찍은 사진을 보내는 것. 그 속에는 두 가지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는 너와 내 기분을 나누고 싶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전 03화 일단, 버티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