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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Sep 18. 2024

대단하지 않아도 나는 대단해



어린 시절 나는 무엇을 꿈꿨을까. 미래의 내 모습을 어떻게 그렸기에, 하늘을 바라보며 그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선생님이 내 꿈을 적으라고 했을 때, 나는 늘 빈 종이를 내밀었는데, 지금이라도 돌아가 그 순간의 나에게 무언가를 적을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내 삶의 모든 순간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험을 칠 때도, 처음 무대에 섰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그 사람을 잃었을 때도. 그 모든 순간은 색깔만 다를 뿐, 긴장이란 이름으로 나를 숨 막히게 했고, 때론 아찔하게 다가왔다.



눈이 멀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대학에 들어가고 오디션에 합격한 나는, 그저 잘 나가는 가수가 되는 것을 상상했다. 연습생 때에는 무대 위의 나를 상상했고, 가수가 된 후에는 더 유명해진 나를 상상했다. 돈을 벌지 못하는 가수가 되었을 때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은 모습의 또 다른 나를 상상했다. 이것만으로도 도 나에게 작가적 기질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음악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나는, 떠나는 대신 '무작정 쓰는' 삶을 살아 보기로 했다. 가수 활동을 마친 후 빈털터리가 된 나는 고시촌 반지하 방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싸구려 노트북 하나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보고, 전자책을 읽으며 내 20대 중반의 삶은 1.5평보다 작은 13인치 스크린 속에 갇혀 있었다.



이제 서른 중반에 접어든 나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음식은 웬만하면 맛있고, 십일조도 아깝지 않다. 말씨는 더 따뜻해졌고, 울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더 이상 아끼지 않으며, 자동차를 살 돈 대신 연극과 뮤지컬 같은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린다. 새벽 5시 30분에 눈을 뜨면 글을 쓰고, 잠들기 전에 읽던 성경 구절을 다시 살피며,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겪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마치 세상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식사할 때는 처음 맛보는 음식처럼 ‘이보다 더 맛있는 건 없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먹는다. 웃을 때는 ‘하하’ 소리 내며 웃고, 칭찬은 아낌없이 한다. 비판할 때는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사과할 때는 확실히 한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참 대단하다. 아니, 대견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여기서 잠깐 자신에게 칭찬 한마디 해보자. 그만큼 충분히 잘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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