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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Sep 20. 2024

풍선, 풍선껌



내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건 아이폰을 방해 금지 모드로 해두는 것 말고도 몇 가지가 있어. 테리아 블랙 퍼플, 연필 모양의 펜, 테라 한 캔, 그리고 탁상 선풍기. 신기하게도,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사소한 버릇이 있지. 미뤘던 빨래를 돌리거나, 평소에는 시리얼로 대신하는 아침을 특별히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 그런데,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빠트렸네. 단 걸 좋아하는 내게 가장 필요한 것, 바로 풍선, 풍선껌이야.



폐에 가득 바람을 채우고, 숨을 참고, 눈앞에 모니터가 세상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느리게 눈을 감아. 그 순간 떠오르는 그림을 그려 보지. 마치 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야. 자유롭게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는 거야.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글을 쓰는 건 더욱 그런 것 같아. 다양한 색과 형태, 그리고 감정을 글로 남기면서 그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순간. 사랑과 사람, 상처, 회복, 관계, 그리고 그 너머의 의미까지. 글 속에서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 같아.



너의 선택을 이해하기가 참 어려워. 이번 여름이 이렇게 추석까지 발목을 잡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내 생활이 나아지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게 가능할까 싶어. 너도 잘 알잖아. 우리는 반복 속에서 성장한다고. 월요일부터 일요일, 다툼과 화해, 사소한 일들과 크게 다가오는 것들, 어쩔 수 없는 상실과 회복의 순환. 그래도 아직 이별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아. 내가 신을 믿는 만큼, 너의 마지막 모습이 구름 위를 걷는 듯, 평온해 보이길 바라지만, 그건 내 상상일 뿐이야. 그래서 작은 말풍선을 달아줄게. 네가 그 말풍선과 함께 '둥둥'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른이 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렸을 때 그리던 어른과 같을 거라고 기대했을까. 누구라도 그랬다면, 과연 어른이 되는 날을 기다렸을까? 그러니 가끔은 모른 척하고, 제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흘러가게 두자. 우리가 바라는 곳으로 데려다줄 풍선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니까. 굳이 붙잡지 않아도, 그저 우리 어딘가에 얽히고설켜서 자연스럽게 이끌어줄 테니까. 풍선껌을 씹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은 느슨하게, 그렇게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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