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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Sep 23. 2024

사랑에 대한 단상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뭐야?" 질문을 받은 순간,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너무 간단해 보이는 이 질문이 오히려 복잡하게 다가왔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깊고 어려운 것인데,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 주제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 그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저녁이 되어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도 그런 생각들이 따라오니, 정작 사랑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답을 하려다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답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 순대꼬치 먹고 싶다.”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걸까? 이렇게 중요한 질문에 대답하라면서, 나는 엉뚱한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순간, '내가 너무 대충 했구나'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었고, 그 뒤로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았다. 아마 실망했거나,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나는 좀 더 진지한 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것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예를 들면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집 앞에 늘 있는 작은 카페처럼 말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들이지만, 사라지면 그제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사랑도 비슷하지 않을까? 항상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느껴지다가, 막상 그 자리가 비면 그제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사랑이란, 어쩌면 네가 내 일상 속에 당연하게 자리 잡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고, 같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너의 존재가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고개를 돌리면 너가 내 곁에 있다는 믿음이 항상 깔려 있는 상태. 마치 눈을 감고도 자판 배열을 외우듯, 너의 존재가 내게 그렇게 익숙해지는 것.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안도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은 단지 익숙함이나 당연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랑은 때로 나를 조금씩 지워가며, 그 빈자리를 너로 채워가는 과정이다. 내가 내어준 공간에 너의 기쁨, 너의 슬픔, 너의 모든 것들이 들어와 나와 함께 자리를 잡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 공간을 너로 채워가는 일. 사랑은 편안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상대를 위해 나를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이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점차 상대를 위해 내어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를 조금씩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 너를 채우는 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채워가며, 하나의 더 큰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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