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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Sep 24. 2024

안녕, 축복아! 안녕, 축복아.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쯤이었을까, 너를 처음 만났지.  주먹만 했던 너는 온 세상이 두려운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날 너는 우리 집에 찾아온 작은 선물이었어. 그리고 그 순간부터 너의 존재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어. 네가 온 후로, 각자의 방에 숨어있던 가족들이 소파로 모이기 시작했지. 웃음소리가 집 안을 채우는 횟수도 늘었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너를 ‘축복’이라고 이름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산책했던 공원이 몇 곳이나 될까? 산책 때마다 작은 네 몸집에, 나는 늘 끌려다니기에 바빴지. 너는 작은 몸과는 달리, 힘이 세고 고집은 얼마나 세고 대담했던지. 주변 사람들은 너를 보며 나를 닮았다고들 하더라. 성격도, 얼굴도 말이야.



동네 뒷산에 오를 때면, 너는 산꼭대기에 보물이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헐래 벌떡 달려갔지. 웃기지만, 그때도 난 담배를 피워 너를 따라가는 것도 벅찼어. 산 중턱쯤에 다다르면, 지친 네가 잠시 쉬어갈 때 나는 철봉에 매달려,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너는 무슨 말을 건네듯 나를 바라봤어. 그때는 네가 진짜 말을 건네는 줄 알았어.



넌 내가 침대에 누우면 언제나 곁에 꼭 붙어 잠들곤 했지. 좁은 베개 한쪽에 걸쳐 너의 체온을 느끼면서. 부모님은 가끔 네가 나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 그땐 나도 그 답을 몰라 “모르겠다”라고만 대답했고 실은 지금도 모르겠어.



내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몇 년을 지냈을 때, 그 시간 동안 너는 어떻게 지냈을까? 휴가 때마다 집에 돌아올 때 너는 더 건강해 보였고, 나는 그것만으로 안심했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른이 넘고 보니, 어느새 너는 유모차 위에 고개를 떨군 채 산책, 아니 정확히는 바람을 쐬고 있더라.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산책을 즐기길 바랐어. 한겨울, 패딩으로 너를 감싸고, 얼굴만 쏙 빼고 걸을 때마다 네가 다시 예전처럼 뛰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곤 했지.



그날도 일로 바쁜 하루였어. 저녁 11시쯤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어. 너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하더라. 나는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어.



“축복이도 결국 동물이야, 엄마.”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던 거야. 네가 우리에게 준 기쁨을 모두 슬픔으로 갚아야 한다면, 우리는 남은 생을 온통 우울하게 보내야 할 거야. 내가 피아노를 칠 때 조용히 듣던 너. 어쩌면 네가 내 첫 번째 관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너라는 동물이 영혼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만큼은 영혼이 되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 



"천국에 무지개 다리가 있다면, 나도 걸어 볼래. 그때 다시, 둘이 산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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