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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Sep 25. 2024

하루 끝에, 내가 찾은 나의 계절은



하루가 끝나고 나면, 숨이 턱 막힐 듯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럴 때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해가 저물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흩어진 구름들이 서성이는 하늘을. 그 모습을 보면 문득 맥주 한 캔이 생각난다. 냉장고를 열어 ‘남아 있을까?’ 싶어 찾는다. 기왕이면 블랑이면 좋겠지만, 사실 어떤 종류든 상관없다.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맥주가 아니라, 그 한 모금이 주는 작은 위로일 테니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너는’, ‘하루는’, ‘지금은’... 마치 제목이 된 질문처럼 내게 묻는다. 언제부터 나는 이토록 많은 질문을 품게 되었을까? 노래 한 곡에서 시작된 이 질문들이, 어느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다.



어느 날,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가을은 늘 그런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하늘이 높고 파란 이 계절, 공기 속에 스며드는 그리움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길을 걷다 보면 하늘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그럴 때면 내 목이 뻣뻣해진 이유가 단순히 거북목 때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늘이 보고 싶었던 것일 뿐.



내가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뜨겁게, 그러나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이 진실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나를 꾸미지 않고, 나의 허점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것이 내게 중요하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타인을 더 이해하게 됐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면, 완벽한 하루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매일이 비슷하고, 때로는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숨은 작은 기쁨들이 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를 붙잡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다. 커피 한 잔, 퇴근길에 스쳐가는 바람, 나무 그늘 아래 잠시 머무는 쉼. 그런 순간들이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영화 <ET>를 기억하는가? 외계 생명체와의 교감이 겨우 작은 아이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인간 사이에서도, 그 정도의 거리조차 좁히기 어려운 때가 있다. 내가 당신과 손을 잡을 수 없는 순간이라면, 나는 내 두 손을 모아 기도할 것이다. 나의 진심이 당신에게 닿길 바라면서.



때로는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이 밀려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마음을 다잡는다. 타인을 향한 거친 감정이 결국 나를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는 더 깊이 내 안을 들여다본다. 밖으로 나가 걸어야 한다. 그 길이 비록 건물 숲이라도,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정돈하면 그곳 또한 숲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가끔 세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불안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다. 작은 것들이 내게 주는 위로, 그 속에서 나는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바라본다. 사랑은 그렇게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불완전한 날들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아내고, 그 순간에 진심을 담는 것. 그것이 내가 찾는 ‘사랑의 계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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